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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욱기자의 경계의 즐거움] 연극 '칼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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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욱기자의 경계의 즐거움] 연극 '칼맨'

입력
2009.10.28 0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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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26, 27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펼쳐졌던 캐나다의 무용 '노만(Norman)'을 보자. 과거의 기록 영상과 추상적 동영상 등에 맞춰 무용수가 마치 실재하는 사람과 호흡을 맞추듯 동작을 펼쳤다. 실재와 현실이 착종되는 무대였다. 객석은 오랜 박수로 강력한 지지를 보였다. 우리 무대 예술의 패러다임은 변환에 직면했다.

그러나 그 같은 테크놀로지에 자리를 내주기에는 우리의 성취량이 너무 크다고 주장하는 진영이 엄존하고 있다. 무대는 결국 인간의 것이다. 낡은 수사지만, 무대는 땀과 눈물의 결정체다. 자명한 사실을 우리는 쉬 망각하기 일쑤다. 극단 배우세상의 '칼맨'이 일깨워주는 사실이다.

함경도 사투리가 그렇게 강렬하면서도 구수할 줄은 몰랐다. 중견 연출가들이 일컫듯 '발음이 가장 정확한 배우'로 통하는 김갑수(52)가 북한 말씨에 도전하자, 자그마한 배우세상 소극장 안이 일거에 그의 존재감으로 충만해진다. 그가 주연으로 나선 '칼맨'은 인간이 생동하는 무대란 어떤 것인지 입증했다.

그는 북한에서 내려온 정육점 주인이다. 식칼을 만지는 연륜이 쌓여 거의 신기의 기술에 달했다. 눈 여겨 온 조폭이 그에게 신검을 만들어달라 하지만 거절하자, 그의 딸을 불구로 만든다. 연극은 조폭과 그의 대결 구도 속에 뮤지컬 배우 지망생, 건달 등 주변 인물들을 적절히 배치해 이 시대 한국의 모습을 담아낸다. 연극은 명과 암이 격렬한 음악 속에서 교차해 한 편의 느와르 뮤지컬 무대와 착시되기까지 한다.

이 극단이 2001년 첫 선을 보인 이래 2005년에 이은 세 번째 공연인데 주연의 요구로 한층 더 격렬해졌다. 극장을 삼킬듯한 목소리, 운동으로 다져진 몸매가 극을 받쳐준다. 원로 연출가 강영걸씨도 그 같은 뜻을 기꺼이 좇았다. 두 사람의 의기 투합과 객석의 호응에 자신감이 붙은 극단은 '칼맨'을 무기한 상연키로 했다.

폴란드의 연출가 예지 그로토프스키는 의상, 조명 등 장치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 '가난한 연극'이란 개념을 제시, 연극 무대 미학의 정수를 축약했다. 눈만 떴다 하면 무대 메커니즘, 업 그레이드 운운 하는 시대의 관객들은 발달한 기술력의 향유자라기 보다는 그 속에서 애옥살이 하는 신세를 면할 길 없기 때문이다. '칼맨'은 소극장의 반란이다.

장병욱 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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