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오 국회의장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11월2일 내년도 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직접 국회에서 해줄 것을 요청했다. 김 의장은 "이 대통령은 지난해 국회에서 시정연설을 했는데 이번에도 직접 해 줬으면 한다"며 "대통령이 예산안 시정연설을 하는 것을 전통과 관례로 세워야 한다"고 밝혔다.
우리는 "시정연설은 국민 세금에 대한 정부의 의지를 담은 청사진으로, 대통령이 직접 국민에게 설명하는 게 헌법정신에 부합한다"는 김 의장의 지적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시정연설은 정부의 예산안 사용에 관해 큰 틀을 밝히는 것이다. 세금으로 예산안을 메워줄 국민을 대리하는 국회에서 행정부 수장인 대통령이 직접 시정방침을 밝혀야 한다는 원칙론에 달리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다.
그런데 청와대의 반응이 시큰둥하다. 오래 전에 예정된 행사가 많아 일정을 조정하기가 부담스러워 검토해봐야 한다는 설명이지만, 뒤집으면 올해는 이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을 계획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를 두고 10ㆍ28 재보선 결과에 따라 국회 본회의장에 서는 이 대통령의 모습이 국민에게 달리 비칠 것이라는 점이 요인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그러나 역대 대통령이 국무총리에게 국회 시정연설을 대독하게 하는 데 익숙해진 데는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을 듯하다. 행정부 수반으로서 국회 단상에 서는 대통령은 또 하나의 지위인 국가원수로서의 권위 손상을 느끼기 쉽다. 대선 승리 후의 첫 시정연설은 일종의 '개선(凱旋) 의례'여서 만족감이 부담을 잠재우지만, 그 이후로는 부담이 커진다.
또한 국회의 행태가 결정적으로 이런 부담을 키운다. 6년 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시정연설을 위해 본회의장에 들어설 때 한나라당과 민주당 의원 일부는 아예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았다. 지난해 이 대통령은 본회의장 입구에서 민주노동당의 반정부 시위와 맞닥뜨렸다. 연설을 경청하며 의례적 박수라도 보내진 못할망정 딴청을 피우거나 야유하는 의원들 앞에 대통령이 서고 싶을 까닭이 없다. 대통령의 직접 연설이 관례화하는 데는 본인의 의지 못지않게 국회의 자세와 각오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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