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전 대통령이 총탄에 쓰러진 지 30년이 됐다. 1979년 10ㆍ26 사태의 소용돌이에 휩쓸렸던 '그때 그 사람'들은 강산이 3번 바뀌는 지난 30년간을 어떻게 살았을까.
만찬 당일 박 전 대통령의 건너편에 앉아 있었던 김계원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 올해 86세인 그는 그 동안 칩거에 가까운 생활을 해왔다. 박 전 대통령의 시신을 등에 업고 국군서울지구병원으로 달려갔던 그는 이후 살인 및 내란미수죄로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으나 복권됐다.
만찬에 배석했던 가수 심수봉씨는 한동안 활동을 못하는 '암흑기'를 거쳤지만, 올해 초 데뷔 30주년 기념 콘서트에 이어 8월에는 30주년 기념음반도 발매했을 만큼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당시 광고모델 출신 대학 3년생으로 심씨와 함께 배석했던 신모씨는 사건 직후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 현지에서 결혼했다.
안가에 있었던 박상범 대통령경호실 수행계장은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의 부하들로부터 4발의 총격을 받았으나 대수술 끝에 유일하게 살아남은 인물이다. 그는 이후 대통령 경호실장과 민주평통 사무총장, 국가보훈처장 등을 지냈다. 그는 지인들에게 "박 전 대통령은 말년에 유신헌법을 개정한 뒤 물러나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면서 "박 전대통령이 사석에서 '1~2년 뒤 하야를 해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밝혀온 것으로 전해졌다.
박 전 대통령이 총상을 입은 뒤 옮겨졌던 경복궁 옆 국군서울지구병원에서 정형외과 과장으로 근무했던 성상철 당시 육군 소령은 현재 서울대병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계엄사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사건을 수사한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은 11,12대 대통령을 역임했다. 박 전 대통령의 장녀로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했던 박근혜 의원은 한나라당 대표를 거쳐 차기 대권 주자들 중 선두에 있다.
10ㆍ26 직후 계엄사령관을 맡은 정승화 전 육군참모총장은 2002년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12ㆍ12 쿠데타 세력과 맞서다 징역 10년을 선고받은 뒤 1997년 무죄를 인정받을 때까지 16년간 야인으로 살면서 고통을 겪었다.
대통령 권한대행에 오른 최규하 당시 국무총리는 같은 해 12ㆍ12 사태 직후인 12월 21일 제10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그는 2006년 노환으로 별세했다.
1979년 12월 4일 계엄보통군법회의(1심 재판)에서 주범인 김재규 전 중정부장에게 사형을 언도했던 김영선 당시 재판장은 이듬해 육군 중장으로 예편한 뒤 중정 2차장에 이어 11~13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10ㆍ26 사태 당시 사법부 수장이었던 이영섭 전 대법원장은 1981년 퇴임 후 변호사로 활동하다 2000년 작고했다.
김재규 전 중정부장의 변호인으로 참여한 이돈명 변호사는 우리나라 인권변호사의 대부격이다. 그는 이후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 삼민투 사건, 권인숙씨 성고문사건 등의 변론을 맡았으며 2006년부터 법무법인 덕수의 대표변호사로 재직중이다.
역시 민선 변호인단에 참여했던 홍성우 변호사는 한때 정계에서 활동했고, 태윤기 변호사는 민추협 부의장을 맡아 민주화운동을 주도했다. 두 사람 모두 최근엔 건강을 돌보고 있다.
국선 변호인 중 한명인 안동일 변호사는 자신의 재판 기록을 토대로 '10ㆍ26은 아직도 살아 있다'는 책을 내기도 했다.
양정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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