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연면적 37만㎡ 규모의 국내 최대 복합쇼핑몰인 서울 영등포구 '타임스퀘어'. 남쪽 출입구 한편에는 이상한 팻말이 서 있다. "고객 및 직원들의 통행을 금지합니다. 생태공원쪽으로 우회해 주십시오." 인도에는 작은 초소까지 마련돼 직원 1명이 상시 대기하며 사람들의 통행을 막고 있다.
쇼핑몰을 나오던 앳된 학생 몇몇이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쑥덕거렸다. "영등포역 가려면 저쪽으로 가는 게 가장 빠른데…." 삼삼오오 나서던 중년 여성들도 초소 건너 편을 바라봤다.
이들의 시선이 향한 곳은 2층짜리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은 영등포 집창촌이다. 주부 이모(34)씨는 "말로만 듣던 영등포 집창촌이 타임스퀘어 바로 옆에 있다는 걸 오늘 처음 알고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영등포역 인근 옛 경성방직공장 부지에 타임스퀘어가 문을 연 것은 지난달 16일. 백화점, 영화관, 대형서점, 스포츠 센터 등 쇼핑 및 문화시설이 한군데 모여 있어 주말이면 하루 20만명 이상 찾을 정도로 붐빈다.
그런데 영등포역과 타임스퀘어 사이에 '목에 걸린 가시'처럼 자리한 집창촌 탓에, 가족 단위 고객들이 계면쩍은 풍경을 목격해야 하고 영등포역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도 포기해야 한다.
이날도 저녁이 되자 집창촌 거리에는 성매매 여성 서너 명이 유리문이 달린 가게 앞에 나와 남성들에게 손짓을 해댔다. 경찰 관계자는 "성매매 업소가 50여곳 남아 있는데, 이중 20곳이 실제 문을 열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고 말했다.
1950년대 헌병대와 육군 보급부대가 영등포역 앞에 자리잡으면서 형성된 집창촌은 2004년 성매매특별법 시행 이후 급격히 쇠락했지만 일부 업소들은 끝까지 버티며 홍등을 밝히고 있다. 그렇다고 경찰 탓만 할 상황은 아니다.
업소들이 문을 열고는 있지만, 사실상 성매매 영업은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 수시로 단속에 나서는 경찰 차량과 통행을 막는 타임스퀘어 직원들로 실제 이 거리를 지나는 행인은 찾아보기 힘들다. 20대 후반의 성매매 여성은 "보다시피 개점휴업 상태라 왕복 차비도 건지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들이 이곳을 떠나지 않는 것은 재개발 시행에 따른 보상비를 기대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천호동 텍사스촌, 용산역 앞 집창촌, 청량리 집창촌 등 서울의 다른 집창촌 지역에서는 재개발 사업이 속속 진행되고 있다.
용산의 경우 올해 관리처분인가를 받아 인근 지역은 일부 철거에 들어갔고, 미아리는 이달 1일 조합설립 인가를 받았다. 천호동은 정비구역으로 지정돼 밑그림이 나온 상태고, 청량리는 기본계획수립이 확정돼 본격적인 재개발 사업이 시작된다.
하지만 이곳은 개발 여건이 좋지 않은데다 건물주와 세입자간 이해관계도 복잡하게 얽혀 있어 재개발 사업은 아직 엄두도 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영등포 집창촌 일대는 2002년 '영등포지역 부도심권 지구단위계획'이 수립돼 용적률과 건폐율 제한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특별계획구역'으로 설정됐지만, 지금까지 투자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한때 몇몇 대기업들이 토지매입을 시도했지만 사업성이 없다는 이유로 중단됐다. 부지가 넓지 않고 역세권이라 땅값이 비싼 것이 장애요인이 됐다. 더구나 타임스퀘어의 등장으로 땅값은 더욱 뛰었다. 인근 부동산업소 관계자는 "3.3㎡ 당 2,000만원 정도 하던 호가가 타임스퀘어 개장 뒤 배는 올랐다"고 말했다.
최근 영등포구는 내년에 수립되는 '서울시 도시·주거환경정비 기본계획'에 영등포 집창촌 재개발을 포함시켜 달라고 서울시에 요청했다. 이 계획에 반영되면 토지 소유자들이 조합을 구성해 자체적인 개발에 나설 수 있지만, 재개발까지 넘어야 할 산은 한 두 개가 아니다. 특히 세입자(성매매 업주) 문제가 재개발의 화약고가 될 가능성도 크다.
업주 김모(54)씨는 "남아있는 이들은 더 이상 잃을 것도 없고 빚 때문에 오도가도 못해 악밖에 안 남은 사람들"이라며 "어차피 달리 갈 곳도 없기 때문에 끝까지 남아 버틸 것이다"고 말했다. 세입자가 나가지 않아 건물주가 명도소송을 제기해 소송이 진행 중인 업소도 서너 곳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첨단 쇼핑몰과 집창촌의 불편한 동거가 몇 년 이상 지속될 수 있다는 얘기다. 경찰과 타임스퀘어측도 이 같은 상황에 난감할 수밖에 없다. 영등포서 관계자는 "별 소득도 없으면서 매일 순찰을 돌아야 하고, 왜 집창촌 단속을 안하느냐는 항의 전화도 곤혹스럽다"고 말했다.
타임스퀘어 관계자는 "집창촌으로 향하는 통로는 24시간 통제를 하고 있는데, 우리로서는 딱히 해결할 방법이 없어 답답할 뿐이다"고 말했다.
김창훈 기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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