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어고 문제가 또 도마에 올랐다. 참여정부때 한때 폐지 논의가 있었으나 반대 여론에 밀려 수면 밑으로 잠겼던 외고가 이명박 정부들어 다시 전면에 부상했다. 외고를 '사교육 주범'으로 낙인 찍은 정치권을 중심으로 자율형사립고(자사고) 전환 등 학교 운영 체제 변경 요구가 거세다.
이참에 외고를 아예 없애고 일반 학교 형태로 바꾸자는 것이다. 하지만 "다양성과 수월성을 추구하는 새 정부 교육정책 기조와도 맞지 않는 '마녀 사냥'"이라는 반론 역시 팽팽하다. 이 사이 일반고 또는 특성화고 전환, 영어듣기시험 폐지를 골자로 한 외고 측의 자구책 등 검증되지 않은 여러 방안들이 대안으로 쏟아지면서 학부모와 학생들은 혼란에 휩싸여 있다.
22일 본보 주관으로 자리를 함께 한 김진표 민주당 의원, 백순근 서울대 교수, 교육시민단체인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 김성천 정책대안연구소 부소장은 "정파와 이해 관계를 뛰어 넘은 '범국민미래교육위원회' 같은 협의체를 만들어 외고 문제 해결을 위한 논의를 본격화 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면서 "이번 기회에 고교 평준화와 특성화(수월성) 문제를 어떻게 균형 있게 끌고 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함께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진표 민주당 의원
백순근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김성천 사교육 걱정없는 세상 부소장
사회=김진각 교육전문기자ㆍ정책사회부 차장 kimjg@hk.co.kr
-외고 존폐 문제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외고는 정말 없어져야 할 학교형태라고 보나.
김진표 의원 = "최근의 외고 논란은 단순히 외고 문제로 봐선 안된다. 이명박 정부의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 나아가서는 대입 제도와 관련해 평준화와 특성화 문제를 어떻게 균형을 맞출 것이냐와 연관돼 있다. 분명한 사실은 이해관계의 대립 또는 극단으로 몰아가선 안된다는 것이다. 중지를 모으는 기간이 필요하고, 그것을 통해 부작용이 가장 적은 방법으로 학교의 자율적인 선택권도 부여해야 한다고 본다. 사립이 많은 외고는 법을 고친다(자율고 전환 등이 가능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을 의미)해도 꿈쩍도 않을 것이다. 법으로 맘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문제다. 새로운 교육문제를 유발하거나, 시비를 불러 일으키지 않게 이성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김 의원은 참여정부때 교육부총리를 지냈다. 그는 부총리 시절이던 2006년 초 "외고는 실패한 정책"이라고 규정하고 모집지역을 전국 단위에서 광역시도로 제한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백순근 교수 = "외고 폐지 여부 만을 얘기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것보다는 수능 점수 공개와 외고 폐지 논란을 전반적으로 검토해 우리나라 교육 문제를 새롭게 파악하고 바꿀 시점이 아닌가 싶다. 35년간 이어온 평준화 정책에 대한 기본적인 검토에서부터 수능 성적 공개 및 국가 학업 성취도 결과 평가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고교 교육이 어떻게 가야 되는지를 검토해야 할 시점이다. 개인적으론 수월성과 형평성이 균형을 이루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본다."
김성천 부소장 = "외고 문제는 정말 심각하다. 첫째 정체성의 문제다. 외고는 어학 영재를 양성하는 게 설립 목적이지만 어학 영재는 학문적으로 합의된 바 없고, 판별할 수 있는 도구 또한 없다. 목적 자체가 불분명한 상태에서 평준화 보완책으로 나오다 보니 처음부터 제 기능을 못했다. 두 번째는 사교육비 증대다. 사교육 없이는 외고 진입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강남 학원의 코스 프로그램을 따라가려면 월평균 100만~150만원이 든다. 평균 사교육비가 20만원 정도인데 외고 준비생은 최소 70만원 가량 든다.
외고가 사교육 증폭요인이 되는 이유다. 셋째는 공교육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외고 입시가 공교육만 정상적으로 받아 들어가는 구조가 아니어서 사교육을 유발하는 구조가 내재돼 있다. 교사와 학생에게 영향을 미치고 나아가 공교육의 무력화로 나아갈 수 있다. 계층 배경 관점에서 볼 경우 외고는 균질집단이다. 가정적 변인이 일반고와 실업고에 비해 월등히 앞서있다. 경제적 능력이 있는 학생들이 진입할 수 있는 학교라는 뜻이다. 이런 학교가 대입에서도 좋은 학교로 간다. 특권계층에 대한 특권교육으로 갈 가능성이 있다. 외고를 근본적인 수술대로 올려야 한다. 외고 개혁을 먼저 한뒤 고교 체계 개편 논의가 본격화 돼야 할 것이다."
-딜레마에 빠진 외고를 어떤 식으로 개혁해야 하나.
백순근= "다른 학교와 비교하면 외고에 문제가 많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과연 외고만이 문제인가. 따지고 보면 외고보다 훨씬 더 많은 1,400여개 일반고와 전문계고의 교육부실을 우리가 총체적으로 다뤄야 하는 문제다.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문제 투성이다. 이것들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지 검토해 봐야한다. 외고가 우리나라 고교에 긍정적인 이미지를 준 부隙?많다.
외국에서는 외고와 특목고가 우리나라 고교 교육을 이끌어 간다고 생각한다. 외고와 과학고를 직접 찾기도 한다.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문제가 없는 건 아니지만 우리나라 수월성 교육에 특목고가 기여한 바가 크다. 문제가 있으면 관련 부분만 보완하면 된다. 점진적이고 단계적, 종합적으로 가야 한다."
김성천 = "과연 특목고가 우리나라 교육 발전과 수월성 교육에 기여했는가 묻고 싶다. 과학고는 일부 그런 역할을 했지만 외고는 그렇지 않다. 겉으로는 차별화가 되어 있지만 내부를 깊숙히 들여다보면 궁극적으로는 소위 SKY(서울대 고려대 연세대)에 몇 명을 보내느냐가 목표다. 외고가 왜 수학 잘 하는 학생들을 뽑으려 하는지 모르겠다. 명문대에 몇 명을 보냈는지가 외고 경쟁력 척도이기 때문에 차별화된 교육이 진행된다고 보기 어렵다.
이런 측면에서 두 가지 처방이 필요하다. 단기적으론 외고 입시시스템에서 수학과 과학 가중치를 폐지하고 전형을 단순화해야 한다. 둘째는 영어과를 존속시키지 말고 독일어 등 제2 ,3의 언어를 양성해야 한다. 외고가 가지고 있는 학생 선발권을 정부가 갖고 와야 한다. 특성화고나 자율고, 일반고 등으로 퇴로를 열어주면서 추첨형 방식으로 가야 한다."
김진표 = "외고가 수월성 및 엘리트 교육에 도움을 줬다는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 외고는 학교에서 별다르게 가르쳐 주는 것이 없다. 주위를 보면 공교육과 학원의 역할을 너무 구분하지 않고 판단하는 것 같다. 학원은 입시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게 목적 달성이다. 반면 학교교육은 과정교육이다. 각 학년, 각 단계에 맞게 꼭 알아야 하는 지식, 정보, 생각, 철학 등에 대해 스스로 진도를 나가면서 답을 찾고, 느끼고, 체득해 나가는 것이 공교육의 목표다.
이것이 선진국 교육의 모습이다. 그런 점에서 외고는 자기책임을 못하고 있다. 그것은 제도적으로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전체 교육과정 중 어학 부분이 60%여야 한다는 규제 등이 교육을 가로 막는다. 대학 진학시 20% 정도만 어학계열로 간다는 것은 입시 전문기관으로 전락했다는 얘기다. 학교가 잘 가르쳐서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사교육을 많이 받아서 좋은 대학에 가기 때문에 외고는 실패했다."
-외고가 자율고와 일반고 등 다른 학교 형태로 전환하는 게 가능한가. .
김진표 = "30개 외고 중 18개는 사립, 12개는 공립이다. 이는 뒤집어보면 일반 공ㆍ사립고의 경쟁력을 제고 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일반 고교 교육력만 외고 수준으로 확보된다면 일반고로 가겠다는 외고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반면 자율고 전환문제의 경우 법인전입금 일정 비율 확보 등 조건이 까다로워 1-2개 외고 정도 가능할 것이다. 그만큼 힘들다는 뜻이다. 결국 자율고 전환은 형평성 문제와 함께 법적인 요건 충족 여부 등을 철저히 심사하는 게 중요하다. 교육과정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지 점검해야 할 시점이다."
백순근 = "일반고가 고품질화나 내실화돼 있다면 외고가 전환을 고려할 것이다. 하지만 공교육 부실 현상이 심화하고 있는 마당에 외고의 일반고 전환 논의는 너무 조급하다는 생각이다. 과학고 학생들은 이공계열로 가는데 외고 출신은 왜 어문계열로 가지 않느냐는 지적은 문제가 있다. 사회계열이나 다른 계열 영재학교가 없는 상황에서 외고 출신이 어문계열로 안 간 게 문제라고 해선 안된다. 외고를 자율고로 바꾸는 것 역시 하자를 안고 있다.
내년에 처음 개교하는 자율고는 전혀 검증되지 않은 학교다. 자율고로 가라는 건 무리다. 국제고 전환 논의 또한 지방자치단체가 지원해주는 학교인데, 이런 식으로 특정학교만 밀어주다 보면 일반고의 정상화는 요원하다. 문제가 있다면 수정하거나 보완해야지 다른 학교로 전환하는 건 찬성할 수 없다. 사교육 문제는 내신성적이 상대평가이고, 대입시에서 비롯된 부작용이지, 외고 자체에서 발생하는 부작용이라고 보긴 어렵다."
김성천 = "모든 외고를 자율고로 가라고 하는 건 힘들다. 서울과 지방 여건이 다르고, 공립과 사립이 다르다. 실제로도 불가능하다. 재정자립도를 충족시할 수 있는 학교도 없다. 다만 재정여건이 괜찮은 몇 개 학교는 갈 수 있다고 본다. 자율고는 상위 50%이상 학생이 지원해 추첨으로 선발한다.
추첨은 사교육이 따라붙을 수 없는 제도다. 50%를 추첨으로, 20%를 소외계층 대상 전형으로 한다면 다양한 학생들이 입학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는 외고에 이런 학생들이 들어오기 힘든 구조였다. 특성화고도 일부 가능하다는 생각이다. 단위학교가 선발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선발권에 대해 통제하지 않으면 과열될 소지가 있다. "
-외고 문제 해결에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백순근= "용역을 의뢰해 연말까지 외고 제도개선 결론 내겠다는 정부 계획은 군색하? 두 달 만에 낼 수 있는 것이라면 지금까지 국가는 뭘 했단 말인가. 시간 끌기가 아닐까 싶다. 정부는 이런 것 보다는 그동안 추진해왔던 학교 교육의 질을 두 배로 높이고 사교육을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종합적 처방 테두리에서 자체적으로 큰 그림을 그리는 게 맞다. 단기적으로 잘못된 처방을 해선 안 된다."
김진표= "외고 문제 해결이 긴 안목에서는 공교육 다양화를 통해 전체적인 고교 교육의 질을 높이는 계기가 돼야 한다. 무엇보다 정부는 전체적인 학교 교육력을 높여야 한다. 일반계 공사립고의 교육력이 높아질 수 있다는 희망이 보여야 외고 문제가 올바른 선택,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는 기초가 마련된다. 이렇게 하려면 교육예산 증액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OECD 평균 수준인 연 6조원 규모의 교육세를 안정적으로 마련해야 옳다. 이런 것들을 종합적인 답으로 만들어내려면 범국미래교육위원회 같은 협의체를 사회적 기구로 만들어야 한다. 특정 정권에 치우친 답이 만들어져서는 안 된다."
정리=박관규 기자 ace@hk.co.kr
남보라 기자 rarar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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