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드셔 보세요."
서울 명동 입구에 위치한 중국 음식점 딘타이펑. 식탁 위로 달콤새콤한 냄새를 풍기는 이름 모를 요리들이 연신 올라왔다. 젓가락으로 요리를 한 점 집어서 입에 넣자 오묘한 맛이 입안 가득 퍼졌다. "맛있네. 요리 이름이 뭐예요?""없어요. 제가 개발한 거예요."
"맛있다"는 칭찬에 싱글벙글 거리며 대답하는 요리사는 올 1월에 입사한 신입 변대원(21)씨다. 신입답지 않게 신종 요리를 개발할 정도로 열심인 그는 운명처럼 딘타이펑의 요리사가 됐다.
변 씨는 홀로 자랐다. 어머니는 그가 네 살 때 아버지와 다투고 집을 나갔다. 막노동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던 아버지는 특별한 거처 없이 공사판을 떠돌며 컨테이너 박스에서 살았다. 그마저도 힘들었는지 아버지는 그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서울 후암동에 위치한 보육시설 '남산원'에 그를 맡겼다. "너무 어렸을 적 일이라 잘 모르겠는데, 그때 친누나와 생이별을 했어요."
그 뒤 변 씨가 아버지의 얼굴을 본 것은 10년 동안 딱 네 번뿐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지난해 말 작고한 아버지를 한 번도 원망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었으니까요. 아버지도 힘들었겠죠." 어린 나이에 현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인 그는 그렇게 혼자서 조용히 자랐다.
어머니 얼굴은 아예 기억나지도 않았다. 중학교 1학년때 낯선 아줌마가 보육원을 찾아왔는데 "엄마"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 "우리 엄마 같지 않았어요. 무슨 서류를 보여줘서 엄마인 줄 알았죠."
그렇게 잠깐 만난 어머니는 일본 도쿄에서 누나와 함께 횟집을 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금방 일본으로 돌아갔고 변 씨는 다시 홀로 남게 됐다. 그래서 그런지 그에게 '엄마'라는 단어는 애틋한 감정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그런 변 씨가 요리사의 꿈을 갖게 된 것은 고 2때 뜻하지 않은 사건 때문이었다. 또래들과 심하게 싸우다 갈비뼈가 부러지며 신장이 찔려서, 결국 신장을 1개 잃게 됐다. 체력이 좋지 않아 힘든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그는 보육원의 주방 일을 거들기 시작했다. "의외로 요리가 재미있더라구요. 특히 그릇 위에 음식을 올려놓아 장식하는 것이 재미있어요."
그때부터 변 씨는 아예 작정하고 서울 종로의 요리학원을 다녔다. 그러던 중 그를 눈 여겨 본 보육원 교사가 SK텔레콤이 후원하는 '해피 쿠킹 스쿨' 프로그램을 소개했다. 소외계층 청소년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요리 기술을 가르치는 SK텔레콤의 '해피 쿠킹 스쿨'은 그를 위해 만든 프로그램 같았다.
면접을 통과한 변 씨는 지난해 8개월 동안 해피 쿠킹 스쿨에서 요리를 배웠다. 그는 그곳에서 요리를 제대로 배웠다. "요리 학원 다니는 동안 중식 조리사 자격 시험을 10번도 넘게 봤는데 모두 떨어졌어요. 그만둬야겠다는 생각까지 했어요."
그런데 해피 쿠킹 스쿨은 달랐다. 자격증 취득에 필요한 것들을 많이 가르쳤다. 그곳에서 한식과 양식도 처음 배웠다. "밥을 제대로 할 줄 몰랐어요. 이제는 밥도 잘 짓고 취약점인 칼도 잘 다루게 됐어요."중식은 칼이 커서 다루기 힘들다. 약점을 보완한 변 씨는 올해 초 이를 악물고 재도전해 중식 조리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너무 좋았어요. 세상이 달라지는 듯한 느낌이었죠."
느낌뿐만이 아니라 실제로 그랬다. 이후 변 씨의 세상은 크게 달라졌다. 변 씨가 일하고 있는 딘타이펑 사장이 해피 쿠킹 스쿨에서 그를 가르쳤던 교사 중 한명이었다. "사장님이 집에 찾아와 요리해보겠냐고 하더라구요. 마다할 이유가 없었죠."
그때부터 아침 10시에 출근해서 밤 10시까지 주방에서 음식과 씨름하는 고된 나날이 시작됐지만 변 씨는 너무 행복했다. 그가 일하는 곳에는 총 12명의 요리사가 있다. 요리사라고 다 같은 요리사가 아니다. 등급이 있다. 그들은 흰 옷 위에 질끈 졸라맨 노랑, 빨강, 검정 등 띠 색깔로 등급을 구분한다.
처음 입사하면 아예 띠 없이 청소 등 허드렛일만 한다. 그러다 수습 기간 3개월이 지나면 노란 띠를 매고 비로소 조리 기구를 잡을 수 있다. 현재 변 씨는 노란 띠. 후식과 각종 소스, 볶음과 튀김 요리가 그의 담당이다.
입사 후 회사의 배려로 요리 연수도 다녀 왔다. 일본 도쿄, 호주 시드니, 미국 하와이 등 3개월 이상을 선배들과 두루 돌며 세계의 요리를 배웠다. 자신에게 그런 기회가 올 줄 전혀 생각도 못했던 변 씨는 하루 하루가 꿈만 같았다. 머리 속에서 그렸던 이름도 없는 요리가 저절로 손 끝에서 나올 만 했다.
변 씨는 자신을 "운 좋은 남자"라고 했다. 실력에 비해 너무 많은 것을 누리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안정된 직장이 있고, 보육원에서 나와 서울 신길동에 작은 방을 얻어 독립했다. 더 바랄게 騙駭?
그래서 그는 월 160만원 정도 되는 월급에서 30만원씩 떼내 다달이 그가 자란 보육원을 돕기 위해 적금을 들고 있다. "나중에 보육원에 건네 줄 생각이에요. 깜짝 놀라겠죠."상상만 해도 신나는지 변 씨는 싱긋 웃었다.
그의 꿈은 자신의 음식점을 갖는 것. 꿈을 이루려면 갈 길이 멀지만 지금껏 그랬듯 포기하지 않고 한 걸음씩 도전할 생각이다. "내년에는 양식 조리사 자격증에 도전하기 위해 준비중이에요. 아무리 힘들어도 노력하면 되더라구요. 포기하지 말아야죠."
최연진기자 wolfpack@hk.co.kr
■ 저소득층 청소년 요리 교육 'SK 해피 쿠킹 스쿨'
'굶주린 아이에게 물고기를 주는 것보다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라'
유대교 경전 '탈무드'의 격언이다. SK텔레콤과 SK그룹 행복 나눔재단이 진행하는 'SK 해피 쿠킹 스쿨'이 여기 해당한다.
SK텔레콤이 지난해 처음 개설한 해피 쿠킹 스쿨은 가정 형편이 불우한 소외 계층 청소년들에게 체계적인 요리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매주 3회씩 요리 연구가 이종임 수도요리학원장을 비롯한 10명의 전문 위원들과 한명숙 수도요리학원 요리연구가 등이 강사로 참여해 조리 기초 및 한식, 양식 등을 가르치고 있다. 유명 레스토랑 사장, 호텔 요리사, 대학 식품영양학과 교수 등이 전문 위원 및 강사진으로 참여해 일반 요리 학원 이상의 수준 높은 교육을 실시하는 점이 특징이다.
또 월 1회씩 유명 호텔 및 레스토랑 주방을 탐방해 주방장의 특강을 듣는 등 현장 실습 기회도 자주 갖는다. 뿐만 아니라 워커힐, 힐튼 등 유명 호텔 및 레스토랑과 연계한 인턴 실습 기회도 제공하며 조리 분야 대학에 진학하면 장학금을 지급하고 성적 우수자들을 뽑아 해외 연수 기회도 제공한다. 한혜승 SK텔레콤 매니저는 "일반 사회 공헌 활동과 달리 해피 쿠킹 스쿨 졸업 이후에도 취업을 위해 지속적인 지원을 해주는 것이 차이점"이라고 말했다.
덕분에 교육을 받은 청소년들의 만족도가 높다. 지금까지 졸업생은 지난해 1기 22명, 올해 상반기에 수업을 받은 2기 34명 등 총 56명이다. 이 가운데 11명이 조리사 자격등을 취득했으며, 6명은 대학 조리관련 학과에 진학했고, 1명은 음식점에 취업했다. 현재 수업을 받고 있는 3기 35명은 올해 말 졸업 예정이다.
SK텔레콤과 SK그룹 행복 나눔 재단은 올해부터 사업 내용을 확대하기로 했다. 우선 해피 쿠킹 스쿨 사업을 지속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수료생들의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특별 레스토랑을 개설할 계획이다. 경기 가평군 남이섬에 마련할 예정인 가칭'해피 레스토랑'은 올해 졸업하는 해피 쿠킹 스쿨 수료생들이 요리사와 운영자로 참여하게 된다. 한 매니저는 "해피 레스토랑 1호점의 운영 성과가 좋으면 점차 지점 수를 늘려나갈 계획"이라며 "저소득층 청소년들의 자립 기반을 마련할 수 있는 다양한 사업을 개발하겠다"고 강조했다.
최연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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