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두르(tandoor) 화덕 근처에 온 가족이 오순도순 둘러앉아 난(naan)을 카레에 찍어 먹는 모습.
인도인의 식사 하면 대충 이런 광경이 떠오른다. 인도에 직접 가보진 않았어도 요즘은 한국에도 인도 식당이 많아 탄두르나 난 같은 말도 그리 낯설지 않다.
하지만 정작 인도의 평범한 가정집에선 탄두르나 난을 찾아보기 쉽지 않다. 탄두르보다 팬을 더 많이 쓰고, 난보다 차파티(chapatti)를 흔히 먹는다. 또 카레가 아니라 커리라고 불러야 맞단다.
탄두르와 요거트는 찰떡궁합
인도 음식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아 준 사람은 서울 중구 남대문로 밀레니엄서울힐튼호텔을 찾은 인도인 산제이 티아기(38) 주방장이다.
인도의 실리콘밸리라고 불리는 도시 방갈로르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티아기 주방장은 이 호텔이 31일까지 진행하는 '인도 음식 축제'에 초청받아 정통 인도 요리를 선보이고 있다. 20일 오후 그가 일하고 있는 주방을 찾아갔다.
한쪽 벽에 가로 세로 높이 91cm인 커다란 철제 박스가 눈에 들어왔다. 그게 바로 탄두르란다. 아기자기하고 따스한 벽난로 느낌을 연상했던 탓인지 탄두르의 외모가 다소 실망스러웠다.
뚜껑을 여니 열기가 확 뿜어 올라왔다. 내부 온도가 130도가 넘는다. 벽을 진흙으로 바른 커다란 구덩이 바닥에 이글이글 타는 숯이 놓여 있다.
숯불을 피우기도 번거로울 뿐 아니라 화재 위험이 크니 인도에서 집안에 탄두르를 설치한 곳은 별로 없다는 게 티아기 주방장의 설명이다. 게다가 불이 꺼질 경우 다시 요리할 수 있는 온도까지 올리려면 최소 3일은 걸린다. 인도인들도 탄두르 음식을 먹고 싶을 땐 외식을 한다.
주방 한편에선 탄두르에 구울 재료를 만들었다. 두부처럼 생긴 인도 치즈 파니르(paneer)에 칼집을 내고 으깬 감자와 볶은 양파, 파프리카 가루, 마살라 소금을 버무려 넣었다. 여기에 커민과 칠리 가루를 섞은 요거트를 입혔다. 식전 요리인 '아카리 파니르 티카(Achari paneer tikka)'다.
비슷한 양념으로 절인 닭고기 요리 '머르그 아비르(Murg abeer)'와 역시 양념으로 속을 채운 토마토 요리 '바르완 타마타르(Bharwan tamatar)'도 애피타이저로 함께 준비됐다. 이들을 하나씩 긴 꼬챙이에 끼워 진흙 오븐 탄두르에 넣었다.
인도 음식에 요거트가 들어간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티아기 주방장은 "탄두르 요리의 90% 이상이 요거트를 쓴다"며 "인도 향신료와 가장 궁합이 잘 맞는 식품이 바로 요거트"라고 소개했다.
그가 내온 메인 요리인 '머르그 메티 말라이(Murg methi malai)' 역시 마찬가지다. 얇게 저민 닭 가슴살에 칠리 가루와 소금을 뿌리고 생강 가루를 바른 다음, 치즈와 향신료로 버무린 속을 얹어 둥글게 말았다. 여기에 양파 즙을 섞은 요거트를 발라 오븐에 구웠다.
이쯤 되면 빠질 수 없는 게 바로 빵이다. 인도식 빵 하면 대부분 난을 먼저 떠올리지만 현지에선 차파티가 더 대중적인 음식이다. 팬이나 탄두르 벽에 납작하게 붙여 굽는다는 점은 같지만 난은 밀가루 반죽에 효모를 넣어 발효시켜 만들고 차파티는 발효시키지 않고 바로 굽는다.
인도식은 슬로우 푸드
인도 요리 하나엔 보통 10가지 정도의 향신료가 들어간다. 티아기 주방장이 가장 간단한 인도식 커리를 만들어 머르그 메티 말라이에 끼얹었다. 커리 가루와 토마토, 크림, 시금치, 양파 즙으로 만들었다. 언뜻 보면 향신료를 안 쓴 것 같지만 커리 자체에 이미 여러 향신료가 혼합돼 있다.
인도에서 커리는 보통 강황 코리앤더 커민 고춧가루 계피 같은 향신료를 갈아 섞어 만든다. 그러나 요리하는 사람이나 지역에 따라 혼합하는 향신료의 종류와 양이 제 각각이라 인도 내에서도 커리의 맛은 천차만별이다. 인도에서 커리는 일품요리라기보다는 밥이나 빵을 더 맛있게 해 주는 소스나 반찬 개념이라고 봐야 한다.
티아기 주방장은 "인도 음식은 '슬로우 푸드'"라고 강조했다. 앞서 선보인 머르그(닭고기)로 만든 두 종류의 케밥(kebab)이 좋은 예다. 인도에선 구운 고기를 따로 케밥이라고 부른다. 굽는 시간은 10분 내외로 짧지만 양념한 요거트를 입힌 다음 적어도 6시간 동안 재워 둬야 한다.
익히는 방식도 슬로우 푸드다. 인도 가정에서는 보통 탄두르 대신, 중국 냄비처럼 오목한 팬을 약한 불에 올려 놓고 요리한다. 두꺼운 주철로 된 이런 팬은 열 전도도가 낮아 천천히 달궈진다. 재료가 서서히 익는 동안 향신료가 골고루 스며들어 깊은 맛을 낼 수 있다.
티아기 주방장이 준비한 인도식 코스 요리가 이제 거의 완성됐다. 마지막으로 케밥에 찍어 먹는 처트니(chutney)와 후식 '케사리 피르니(Kesari phirni)'까지. 피르니는 인도식 푸딩이다.
불면 날아갈 것 같은 길쭉한 바스마티(basmati) 쌀을 물과 우유에 넣고 익힌 다음, 설탕과 사프란으로 간을 맞추고 차게 해서 먹는다.
그러고 보니 후식을 제외한 다른 4가지 요리엔 물이 ?들어갔다. 티아기 주방장은 "물을 넣고 끓이면 인도 특유의 맛이 스며들지 못하고 날아간다"며 "물을 꼭 써야 할 때도 10~15% 정도 요리가 진행된 다음에야 넣는다"고 설명했다.
이달 말까지 밀레니엄서울힐튼호텔의 카페 '실란트로'를 방문하면 현지의 맛을 그대로 살린 정통 인도 요리를 맛볼 수 있다. (02)317_3062
향신료와 허브, 그 차이를 아시나요
인도 요리에 많이 쓰는 향신료와 허브. 둘 다 음식의 맛과 향을 돋우는 식물을 말한다. 하지만 엄밀히 구분하면 차이가 있다. 요리에 쓰이는 부위가 다르다.
허브는 식물의 잎과 줄기다. 처트니에 들어가는 페퍼민트가 대표적인 허브다. 잎을 갈아서, 또는 줄기를 증류해 기름을 얻어 요리에 사용한다. 처트니는 우리 말로 치면 민트 소스인 셈이다. 민트와 커리 가루, 칠리 가루, 소금을 섞어 만든다.
향신료는 식물의 씨앗 뿌리 껍질 꽃 열매를 말한다. 커리 가루의 주 재료로 생강과 비슷하게 생긴 강황은 향신료로 구분된다. 티아기 주방장이 요리에 사용한 커민(씨) 코리앤더(씨) 사프란(꽃의 수술) 파프리카(열매) 모두 허브가 아니라 향신료다.
향신료 여러 가지를 다양한 비율로 섞어 만든 식 재료를 인도에서는 따로 마살라라고 부른다. 커리 가루도 넓은 의미에서 마살라에 속한다.
임소형 기자 precare@hk.co.kr
사진=배우한기자 bwh3140@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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