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유, 무뚝뚝한 제가 요염한 트랜스젠더라니. 파격도 이런 파격이 없죠."(윤도현) "전 과하게 여성스러워 반감을 살까 걱정돼요. 최대한 절제하려고요."(강태을)
22일 서울 대학로에서 만난 윤도현(37), 강태을(30)은 좀 핼쑥해진 모습이었다. 이들이 맡은 뮤지컬 '헤드윅'의 헤드윅은 가녀리면서도 섹시한 여성미가 강조되는 인물이라 다이어트를 시작한 것. 둘 다 4kg가량 빠졌다고 했다.
'헤드윅'은 196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성전환 수술에 실패한 동독인 트랜스젠더의 이야기다. 그는 연인에게도 배신당하고, 주류사회로부터 손가락질 받으며 경계인으로서 살다가 음악에서 진정한 자신을 찾는다. 존 카메론 미첼 원작의 이 작품은 국내에서 2005년 초연된 후 조승우, 오만석, 엄기준, 김다현, 조정석 등 뮤지컬 스타들을 꾸준히 배출해왔다.
"영화 '헤드윅'을 3번이나 봤어요. 헤드윅에 사용되는 클래식 하드록은 제가 무척 좋아하는 장르죠." 9년 만에 뮤지컬 무대에 서게 된 윤도현은 2008년 '윤도현의 러브레터'에서 여장 차림으로 '헤드윅'의 삽입곡 'Angry inch'를 부르기도 했다. '대장금' '돈주앙' '어쌔신' 등을 통해 슈퍼 루키로 인정받은 강태을도 "일본 극단 '사계'에 있을 때부터 존 카메론 미첼, 조승우, 오만석씨의 공연 영상을 꼼꼼히 챙겨봤다"며 애정을 드러냈다.
'헤드윅'은 개성이 강한 주인공의 모노드라마 형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주역의 부담이 상당한 작품. 좌절에서 증오, 희망으로 변해가는 내면을 섬세하게 표현하려면 연기는 한층 버거워진다. "노래는 만날 하던 거니까 괜찮은데 연기가 문제예요. 외국은 트랜스젠더가 연기하기도 한다던데 저는 그냥 남자잖아요. 이해는 하지만 감정 이입은 잘 안되죠. 아내는 '가능하면 출연 취소하라'고 했고, 열성 팬들은 저를 위로하고 있어요."(윤도현) 강태을도 걱정을 보탰다. "전 친척 누나만 25명일 정도로 여자에 둘러싸여 자라서 그런지 분명 여성성은 있어요. 한데 헤드윅이 여자는 아니잖아요? 또 대사는 얼마나 많은지. 올해 제가 맡은 전 작품의 대사를 더해도 이보단 적어요."
따라서 매일 연습실을 찾는 것은 기본이다. 윤도현은 대사를 MP3에 담아 수시로 들을 정도. 심정적으로는 한국에서 각광받기 힘든 록을 하며 느꼈던 소외감을 헤드윅에 투영하고 있다. 강태을은 '대본을 읽으며 간접적으로 돼보는 것이 더 연극적'이라는 아버지(미국 라마마 극단에서 배우 겸 연출가로 활동 중인 강만홍씨) 말씀을 되새기며 감정을 몰입하고 있다.
지난 21일 두 사람은 연습실에서 처음으로 서로의 연기를 봤다. "도현이 형은 엄살이에요. 보는 내내 얼마나 재밌던지. 오죽하면 형의 코믹연기로 첫 곡 'Tear me down' 장면이 바뀌었겠어요. 제 주변 배우들도 기대가 커요."(강태을) "태을씨는 옷 정리하는 것만 봐도 여성스러움이 묻어나요. 노래도 힘있고, 연기야 당연히 잘하고."(윤도현) 둘은 경쟁 대신 서로를 치켜세우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이들은 헤드윅이 가발을 벗고 부르는 마지막 곡 'Midnight Radio'를 좋아하는 것도 닮아있었다. 윤도현은 "무대에서 눈물 흘려본 게 세번뿐인데 공연 때 울다가 노래를 못 부를까 걱정된다"고 했다.
이번 공연에는 윤도현과 함께 YB(윤도현 밴드)의 멤버도 앵그리인치 밴드로 출연해 연주를 담당한다. 섹시댄스를 추며 'Sugar baby'를 부르는 윤도현과 수염을 깎아내고 남성미 대신 각선미를 뽐내는 강태을까지, 본인들도 기대할 정도로 볼거리가 충분하다. 11월 14일부터 내년 2월 28일까지, 서울 KT&G상상아트홀에서 만날 수 있다. (02)3485-8700
김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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