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서적 발행 규모로 볼 때 세계 10위권의 출판대국이다. 그러나 정작 국민들의 독서량은 적다는 통계가 늘 발표된다. 시장은 크고 책의 편집이나 디자인은 훌륭하지만, 콘텐츠의 질이나 독서 인구의 저변이 취약하다는 말이다. 한국일보는 '한국출판문화상 50년'을 기념해 '책, 미래와의 대화'에 이어 우리 출판의 과거와 현재를 조명하는 새 기획 '책의 풍경, 2009'를 오늘부터 매주 목요일자에 연재한다.
책이라는 상품은 기획해서 쓰고, 편집해서 찍고, 사서 읽는 세 단계 행위를 통해 하나의 문화 사이클을 완성한다. 세상 변해가는 속도에 맞춰 각 단계의 풍경도 적잖이 변했는데, 탈태의 폭이 가장 큰 것은 '사서 읽는' 모습이다. 10여년 전만 해도 신문 서평 등을 참고해 가까운 서점에서 책을 보고 구매하는 것이 일반적 풍경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책의 첫 페이지를 넘길 때까지의 가장 보편적 과정은 '인터넷 결재'와 '당일 배송'이다.
점포도 점원도 없는 '슈퍼 서점'
출판계 불황에도 불구하고 시내의 대형 서점에는 늘 사람이 붐빈다. 그런데 유심히 보면 책을 한참 고르다가 빈 손으로 나가는 손님이 적지않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집이나 사무실에서 온라인 서점에 접속, 골라 놓은 책을 주문한다. 5%에서 많게는 절반 가까이 할인된 값에 책을 구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화관광부와 한국출판연구소의 2007년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32.2%가 온라인 서점을 통해 책을 구입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온라인을 이용한다'는 응답은 나이가 어릴수록 높아, 이 추세는 앞으로 더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매출액을 기준으로 하면 온라인 서점의 비중이 더 커졌다. 대한출판문화협회에 따르면 2008년 도서시장에서 온라인 서점의 매출 비중은 30%를 넘어섰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은 이 수치에 대해 "교보문고나 영풍문고 등 대형 서점의 매출 총액을 오프라인 부분으로 집계한 것이며, 이들의 온라인 매출을 따로 계산할 경우 전체 시장에서 온라인 매출액 비중은 50%를 넘어선다"고 말했다.
값이 싸다는 이유 외에도 온라인 서점이 독자(구매자)를 끄는 이유는 다양하다. 온라인 서점 홈페이지에는 신간 정보나 전문가 서평, 독자 리뷰 등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데이터베이스가 구축돼 있다. 발품 팔 필요 없이 모니터 앞에 앉아서 좋은 책을 고를 수 있다고, 많은 독자들은 생각한다. 독자 커뮤니티 기능이나 각종 이벤트를 제공하는 등 온라인 서점은 도서 구매 경로를 넘어 문화 포털의 역할도 담당하고 있다.
온라인 서점 앞에 서면 작아지는 출판사들
온라인 서점의 싼 가격은 비정상적 입고율(도서 정가 대비 온라인 서점에 입고되는 가격 비율)로 인해 가능하다. 일반적 입고율은 40~45% 정도로 이는 출판사에 큰 부담이 된다. 독자들이 최근 몇 년 새 책값(정가)이 이상하게 올랐다고 느끼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메이저 출판사인 W사는 몇 해 전 입고율을 놓고 온라인 서점들과 갈등을 빚었는데, 온라인 서점들은 W사에서 나온 책의 할인율을 대폭 낮추는 것으로 대응했다. 이로 인해 매출이 줄어들자 W사는 결국 백기를 들었다. W사는 마케팅비의 90% 가량을 온라인 서점에 지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책의 다양성이 파괴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온라인 서점에서도 팔리는 책은 홈페이지의 메인 화면에 걸리는 몇 권이다. 이 '메인'을 놓고 벌이는 출판사들의 경쟁과 온라인 서점의 권력화는 심각한 수준이다. 출판사가 메인을 '딸'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인기 작가의 신작, 이른바 '빅 타이틀'을 확보하는 것이다. 베스트셀러 작가군이 한 손에 꼽을 수 있는 숫자로 집중되는 현상, 외국 인기 작가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흐름의 큰 원인이 여기에 있다.
온라인 서점의 독과점 폐해는 독자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10여년 전까지 출판시장에서 도매와 소매의 비율은 6대 4 정도였는데, 지금은 도매의 비율이 10% 정도로 축소됐다. 도매상이 사라졌다는 것은 도매상으로부터 책을 떼 파는 소매상, 곧 소규모 서점이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네에 서점이 없어졌기 때문에 독자들이 직접 손에 펼쳐 들고 책을 고를 기회도 줄었다. 자연히 온라인 서점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는데, 한 조사에 따르면 온라인으로 책을 구매한 독자의 30% 정도는 "원래 내가 원했던 책이 아니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 도서 유통구조의 대안은
매년 10월 중순이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의 책이 도서시장에서 잠깐 각광을 받는다. 최근 이들의 대표작이 아닌 다른 작품들이 온라인 서점의 메인 화면에 노출되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이는 온라인 서점과 출판사들 사이에 복잡하게 얽힌 이해관계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이런 폐해를 바로잡기 위해 출판사들이 공동 출자해 운영하는 온라인 서점 등이 대안으로 제기되지만 실현까지는 난관이 많다.
한기호 소장은 "궁극적 대안은 온라인 서점 납품 도서에도 도서정가제를 시행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가격 할인이라는 온라인 서점의 막강한 무기를 방치하고서는 출판 다양성 확보도, 동네 서점 활성화도 요원하다는 것이다. 한 소장은 "최근에는 온라인 서점 사이에서도 승자 독식이라는 인터넷의 속성이 적용돼 1위 업체로의 쏠림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독자들도 당장의 싼 책값만 바라지 말고, 건강한 출판시장을 위해 고민을 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상호 기자 shy@hk.co.kr
■ 국내 책 유통 구조 변천사
국내 출판물의 유통방식은 다각도로 변해왔다. 해방 직후 출판물은 거의 길거리에서 거래됐다. 김원대 전 계몽사 회장은 대구 가판에서 혼자 <한글 맞춤법 통일안> 을 2만권이나 팔았다고 회고했을 정도이다. 한글>
1950년대에는 전쟁으로 도서 판매량이 급격히 줄면서 이른바 덤핑이 나타났다. 서점으로부터 책값을 받지 못한 출판사들이 동대문 영세상에 재고를 팔기 시작한 것. 출판사들은 이어 자구책으로 전집류 외판에 나섰고 시장에 활력도 가져왔지만, 할인된 가격을 그마저도 월부로 내는 외상제를 실시해 서점을 침체시켰다. 할인외상제로 1965년 한 해 동안에만 서울 서점의 절반이 폐업했다는 통계도 있다.
한글세대의 등장은 출판시장을 되살렸다. 1970년대 중반 무렵 문고본에 이어 본격적인 단행본 출판시대가 열렸고, 도서정가제 실시는 출판계에 최대의 호황을 가져왔다. 1980년을 전후해 종로서적, 교보문고 등 이른바 대형 서점이 생겨나면서 새로운 출판문화의 시대를 열기도 했다.
온라인 서점이 등장한 것은 IMF사태를 전후한 시기다. 부길만 동원대 교수는 "대형서점은 갈수록 커지고, 지역 문화센터 역할을 해야 할 동네서점이 문을 닫는 현 출판시장의 양극화는 출판계가 풀어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김혜경 기자 thank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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