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50여 년 전의 전쟁 폐허를 딛고 짧은 기간에 세계 12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것은 1960년대 중화학 공업을 필두로 한 고부가가치의 과학기술을 육성한 덕분이다. 그런데도 1998년에 외환위기를 겪었고, 작년부터는 세계 금융위기로 또다시 경제 불황을 겪고 있다.
많은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국가경쟁력이 불안한 가장 큰 요인으로 수출 주도형의 높은 대외의존성을 지적한다. 주요 수출품 제조에 필요한 기초 부품 소재들과 원천기술의 높은 수입의존성도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사실은 눈부신 발전을 이룩했던 IT산업조차 반도체를 비롯한 전자 재료 자원의 고갈로 한계에 도달하고 있는 상황에서 쉽게 알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 LCD와 터치스크린용 ITO는 일본이 독점하고 있고, 20nm 미만 신개념 전자소자도 원천기술이 부족하다. 또 절반의 성공에 그친 나로호 발사를 통해, 우주국가로 도약하려면 액체엔진과 같은 부품소재의 원천기술 확보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한 바 있다. 선진국으로 우뚝 서려면 미래 신기술을 개발하고 그 원천기술을 확대함으로써 과학기술 주권을 확보하는 일이 시급하다.
오늘날 수많은 나라들이 미래 성장동력으로 첨단융합기술과 녹색기술에 집중 투자를 하고 있다. 화석에너지가 고갈되고 이산화탄소 배출 또한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어, 녹색 과학기술의 발전은 지구 생존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천연자원을 보존하고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저탄소 녹색성장을 얼마나 성공적으로 선도하느냐가 국가경쟁력 제고 및 인류 생존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가 되는 것이다.
녹색기술과 함께 중요한 미래 신기술은 고도의 융합기술이다. 화학기술이 녹색기술로 거듭나 미래 신성장 산업이 되기 위해서는 재료공학 화학공학 전자 분야와의 적극적 융합이 필요하며, 암 뇌기능 등 인류의 불가사의 현상을 밝히는 일도 의학 생명공학 약학 등과의 융합을 통해서 가능하다.
녹색기술과 융합기술이 지속 가능한 핵심 산업으로 발전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원천 기술을 선도적으로 개발하고 우수인재를 육성하는 데 힘써야 한다. 원천기술 개발을 위한 창의적 융합 능력은 물리 화학 수학 생물과 같은 기초과학 분야 연구와 교육을 통해서만 배양할 수 있다.
경제대국 미국이 기초과학 분야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가장 많고 그 뒤를 독일 일본이 잇고 있는 사실에서도 기초과학 육성이 원천기술 확보와 경제 발전에 크게 기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국과 독일 일본은 실제로 거의 모든 과학 관련 예산을 쏟을 만큼 기초과학에 투자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녹색성장의 세계적 선두주자가 되기 위해서는 응용과학과 공학을 우선시해온 기술개발 시스템을 기초과학 중심으로 전환하고, 기초과학 분야가 인정 받고 대우 받을 수 있게 노력과 투자를 해야 할 것이다.
순수 기초과학 연구가 목적인 기초과학연구원을 중심으로 한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조성은 매우 시의적절한 조치로 생각되며, 기초과학 중심의 국가 과학기술개발 시스템을 위한 백년대계라고 여겨진다. 향후 기초과학연구원은 독일 막스 플랑크연구소나 일본 리켄(이화학연구소)처럼 대학들과 연계해 창의적 순수 기초과학 연구에 치중하고, 응용연구 중심의 기존 정부출연 연구원들과의 융합을 통해 상생을 꾀해야 할 것이다.
기초과학, 응용과학 간 시너지를 만드는 과학기술 개발 시스템은 녹색성장을 위한 과학기술 주권은 물론 노벨상 수상을 앞당길 것이며, 국가경쟁력을 장기적으로 굳건하게 안정시킬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윤민중 충남대 교수ㆍ기초초과학학회협의체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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