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성인 10명 가운데 평균 3명은 '잠 못 드는 밤'을 보내고 있다. 대한수면연구회가 20~69세 5,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27.6%가 불면증을 호소했다.
이 가운데 여성 불면증 환자가 30.3%로 남성(24.9%)보다 많았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에 따르면 수면장애 환자는 2001년 5만1,081명에서 2005년 2배가 넘는 12만1,858명으로 증가한 데 이어 2008년에는 22만7,905명으로 늘었다. 8년 새 4.5배로 급증한 것이다. 수면장애에 따른 졸음 때문에 교통사고로 사망하고, 직장을 잃거나 학업을 계속하기 어려운 사람도 있다니 정말 심각한 질환이다. 게다가 고혈압 당뇨병 등과 같은 질병에 시달릴 위험도 높아진다고 한다.
불면증, 원인 질환 치료가 우선
불면증은 잠이 오지 않는 증상일 뿐 독립된 질환이 아니다. 따라서 잠이 오지 않는 원인을 가려내 치료하는 게 필수적이다. 커피 콜라 등 카페인이 많이 함유된 음료를 취침 전에 마시면 잠을 잘 이루지 못한다는 건 상식이다. 술을 마시면 쉽게 잠이 들기도 하지만 새벽에 깨는 등 잠의 질을 크게 낮출 수 있다.
사람들은 흔히 쓸데없는 걱정 때문에 잠을 자지 못한다. 낮에 충격적인 일, 화나는 일을 겪어 잠을 못 잔 뒤 '불면증이 계속되면 어떻게 하나'라고 불안해 한다. 이런 불안은 자율신경을 흥분시키고, 이로 인해 다시 잠을 못 자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런 '정신생리성 불면증'이 전체 불면증의 최소 25%를 차지한다. 습관성이 높지 않은 신세대 수면제로 쉽게 개선할 수 있다.
자려고 누웠는데 다리가 저리거나 벌레가 기어 다니는 듯한 느낌이 드는 '쉬지 않는 다리 증후군'도 잠을 이룰 수 없게 만든다. 일어나 발을 구르거나 다리를 긁으면 이상한 느낌이 사라지지만 오래지 않아 반복되기 때문. 특히 여성에게 많이 나타난다. 철분 부족, 당뇨병, 신장병 등이 원인일 수 있어 원인 질환을 치료하는 게 우선이다.
낮에 졸음이 쏟아지는 수면과다증
수면과다증은 항상 또는 갑자기 졸음이 쏟아져 견디기 힘든 증상이다. 스스로 졸음을 느끼지 않는 상태에서 인지ㆍ운동기능장애로만 나타날 수도 있어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잠자는 도중 숨을 일시 멈추는 일을 되풀이하는 수면무호흡증은 혈중 산소포화도를 떨어뜨려 깊은 잠을 방해한다. 당연히 낮에 졸릴 수밖에 없다. 장기적으로는 고혈압 부정맥 뇌졸중 등 무서운 합병증을 가져온다. 상기도 공간이 좁아지면 코골이, 붙으면 무호흡증을 일으킨다. 마스크 형태의 의료 기기로 압력을 높여 상기도가 폐쇄되는 것을 방지, 증상을 개선할 수 있다.
수면 중 자신도 모르게 주로 다리 종아리 부분 근육을 정기적으로 수축시키는 '반복적 수면 중 하지 운동증'도 낮에 졸음이 쏟아지게 한다. 다리 근육이 30초 간격으로 수축되는데 이런 현상이 잠자는 동안 수십 회 이상 반복돼 깊은 잠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보통 근육이완제로 치료한다.
걷다가, 혹은 중요한 회의에서 발표하다가 졸기도 하는 수면발작, 웃거나 화를 내는 등 정서적으로 크게 흥분한 상태에서 갑자기 몸에 힘이 빠져 쓰러지는 탈력발작도 사고를 부르는 수면장애다. 과거에는 수면 중 나타나는 간질로 생각해 간질약을 처방하기도 했지만 최근 잠이 덜 오게 하는 각성제나 기운이 빠지지 않는 항우울제로 치료한다.
수면 중 특이한 행동 초수면
잠자다가 잠이 덜 깬 상태에서 걸어 다니거나 소리를 지르고, 심지어 옆에서 자는 사람을 폭행하는 초수면도 전 인구의 5% 정도에서 나타나는 수면장애다.
몽유병은 전체 수면 중 전반 3분의 1에 잘 나타난다. 냉장고에서 음식을 꺼내 먹는 것처럼 매우 정교한 행동도 한다. 고층 아파트 창문으로 나가 사망한 사람도 있다. 몽유병이라는 이름처럼 꿈을 꾸면서 걷는 게 아니라 깊은 잠에 빠진 상태에서 기억도 하지 못하면서 다양한 행동을 하는 게 특징이다.
자다가 갑자기 일어나 소리를 지르는 야경증은 4~12세에 주로 나타난다. 심장 박동수가 늘고 혈압이 올라가는 등 극심하게 불안한 상태가 1~7분 간 지속된다. 몽유병처럼 어린이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없어지지만 어른이 돼서도 증상이 있으면 치료받아야 한다.
안구 운동이 활발해지면서 호흡과 맥박이 빨라지는 렘(REM) 수면. 정상인이라면 온 몸의 운동 근육에 힘이 빠져야 하는데 '렘 수면 행동장애' 환자는 그렇지 않다. 누군가에게 쫓기는 꿈을 꾸면 실제로 벌떡 일어나 달아나다가 벽에 부딪혀 다치기도 하고, 누군가를 때리는 꿈을 꾸면 옆에서 자던 사람을 때려 다치게 하기도 한다.
정도언 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 교수는 "불면증 수면과다증 초수면뿐 아니라 초저녁에 잠들어 새벽에 깨는 등 남들과 다른 수면 패턴이라면 전문의 진단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허정헌 기자 xsco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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