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뉴욕 링컨센터 무대는 잇단 국제 콩쿠르 우승을 예고하는 신호탄일 뿐이었다. 전문 연주가로서 세계를 누비는 피아니스트 백혜선(44)씨에게 '세계무대 데뷔 20주년'이 다가왔다. 핸드폰을 타고 오는 그의 목소리가 가을 하늘 같았다.
_11월 15일 예술의전당에서 내한 피아노 독주회를 하는데, 레퍼토리는.
"나에게 커다란 계기가 된, 나를 인정받게 해 준 곡들을 시대별로 선곡했다.'모차르트 소나타 F장조(K.533)'는 보수적 유럽 음악계에서 내가 인정 받게 된 계기를 마련한 곡이다. 헝가리 민속 음악을 차용한 바르톡의 소나타는 어렵기는 하지만 마치 우리 굿거리 장단 같은 신명이 있어 좋다. 리스트의 '피아노 소나타 b단조'는 학생 시절, 꼭 피아니스트 돼야겠다고 결심하게 한 곡이다."
_한국에서 보기 힘들다.
"미국 뉴욕에 5년째 있다. 비행기편이 편한데다 지리적으로도 아시아와 유럽의 중간 지점이어서 활동이 용이하다. 맨해튼 한복판에 사는데 아들 원재(8), 딸 연재(7) 등 두 아이가 그곳을 특히 좋아한다. 나로서는 많은 음악인들을 쉽게 접할 수 있다는 이점을 무시할 수 없다. 매니지먼트 문제 때문은 아니다. 나는 직접 한다."
_콩쿠르가 과연 예술적 실체와 관련이 있는가. 한국에서는 콩쿠르 지상주의가 여전히 유효한데.
"콩쿠르 입상은, 남의 귀를 거스르지 않는 연주를 했다는 것일 뿐, 예술적 성과와는 무관하다. 나이 서른이면 콩쿠르 연령이 끝나는데 한국은 콩쿠르에 너무 큰 비중을 두다 보니 그 이후를 생각하지 못한다. 음악가를 키우기 위해서는 콩쿠르 이후를 배려해야 한다. (한국이 아니라) 외국 무대에 설 수 있도록 하는 조직적 후원이 절실하다."
_고전주의, 낭만주의에 연주가 집중돼 있다. 연주의 무게 중심을 옮기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가.
"현대음악을 하고 싶은데 쉽지 않다. 내가 작곡가가 아니라는 현실적 제약도 있다. 청중의 선호도도 고려해야 한다."
_요새 가장 주력하는 일은(이 질문에 그는 놀랄 정도로 크게 웃었다).
"아이 키우는 것만으로도 너무 바쁘다. 다음은 연습이고 그 다음이 책 읽기다. 사실 어린이를 위한 음악회를 열심히 하고 싶다. 지금 국립중앙박물관 소극장에서 '바바 이야기'라는 어린이 음악회를 하고 있는데 더 열심히 해야겠다. 어린이 앞에서 피아노 치고 내레이션 하는 일이 즐겁다."
_스물아홉 살 때 서울대 음대 교수에 임용돼 화제를 모았는데.
"좋은 자리가 너무 빨리 왔다. 그러나 대학 교육과 연주를 병행하기가 실제로는 너무 힘들었다. 타 대학 학생 만나는 일이 제도적으로 막힌 것도 문제였다. 서울대 그만 두고 부산예술제 음악감독 맡고 나니 도와주고 싶은 학생들이 더 많이 생겼다."
_서울보다 지방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지방의 가능성이 좋다. 영어로 진행되는 부산예술제는 학생과 직접 교류한다는 사실이 매력이다. 수도권에서 연주를 할 때도 성남, 고양 등 서울 인근에서 더 많이 했다. 지방에서 연주하면 학생들을 더 많이 만날 수 있는데 그것이 좋다. 한국에 오면 서울 뿐 아니라 대구, 울산, 광주 등 지방 도시를 꼭 찾는다. 발굴할 인재가 무궁무진하다는 걸 알았다."
_한국 팬은 뒷전인 것 같았는데.
"작년까지는 아이들 때문에 내한 연주를 자제했다. 내년부터는 1년에 3회 이상은 내한 공연을 할 계획이다."
_책 읽기를 좋아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좋아하는 한국 작가는.
" 박경리다. <토지> <김약국의 딸들> 을 특히 좋아한다." 김약국의> 토지>
그는 "이번 연주회에서는 다양함을 즐기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를 테면 지성적, 정서적 감흥이죠."
'세계무대 데뷔 20주년 기념 _ 2009 백혜선 피아노 독주회'는 11월 15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다.(02)518-7343
장병욱 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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