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들만 그렇게 느끼는지 궁금해 여성들에게 물었다. "사실 여자들도 다 알고 있어요. 남녀의 미묘한 입장 차를 위트 있게 꼬집어주는 것 같아요. '저거 우리 커플 이야기야' 하고요."
KBS 개그콘서트(개콘)의 '남성인권보장위원회(남보원)'. 데이트를 하면서 소심한 '찌질남'으로 보일까봐 차마 연인에게 꺼내지 못했던 남성들의 불편한 속내를 속 시원히 까발린다. '남보원'의 박성호 황현희 최효종을 14일 오후 개콘 녹화에 앞서 만났다.
대개 이런 식이다. '백일선물 기대 마라, 아직 할부 안 끝났다' '커피 값은 내가 내고, 쿠폰 도장 니가 찍냐' 등 피부에 와 닿는 이들의 외침에 남성은 물론, 여성들도 동의한다. 아이디어라는 게 머리를 쥐어짜도 안 나올 때가 있고, 술 자리에서 툭 내뱉은 말이 가공돼 정식 코너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남보원'이 탄생한 곳도 술자리다. "술 먹다가 나왔죠. '도움상회' 코너를 끝내고 쉬고 있었는데 현희가 남녀 역차별에 대해 한번 해 보자고 하더라고요. '아 이거구나' 무릎을 쳤죠."(박성호)
'범죄의 재구성' '소비자 고발' 등 개콘의 간판코너를 이끌었던 황현희는 "김석현PD의 제안으로 남녀 역차별을 생각했고, 평소 눈 여겨 봐둔 후배 효종이와 성호 형이 합류하면서 코너가 완성됐다"고 말했다. 코너에서 박성호는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를 연상케 하는 두루마기를 입고, 황현희는 노조 투쟁을 상징하는 붉은 조끼와 머리띠를 두른 채 불끈 쥔 주먹을 치켜 올린다. 막내 최효종이 북을 두드리며 짓눌려 있던 '남심(男心)'을 선동하자 녹화장의 남성 방청객들도 자리에서 일어나 구호를 외치며 그간의 서러움을 함께 토해낸다.
최근 박성호가 강 대표의 특징일 수 있는 '눈 밑 왕점'을 한번 그리지 않고 나온 것을 두고 살짝 논란이 일기도 했다. "사인펜으로 점을 그리는데 실수로 깜빡 한 거예요. 아무도 모르고 있다 녹화 끝나고 작가가 '왜 안 그렸냐'고 하더라고요. 아차 싶었죠."(박성호) "그쪽(강 대표 측)에서 재미있게 잘 보고 있다며 직접 출연의사도 밝혀 주셔서 고마울 뿐이죠."(황현희)
사실 이 코너는 '남자,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제목으로 첫 회 녹화를 마쳤다. 근데 편집된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다소 무거운 소재를 택한 게 이유였다. 실생활에서 남녀가 공감할 수 있는 소재로 급선회했는데, 구호를 외치는 부분이 '빵' 터진 것이다. '속옷에 뽕 넣는 거 인정한다, 키 높이도 인정해라 / A컵도 인정한다, 160(㎝)도 인정하라''운전은 내가 한다, 기름 값은 네가 내라 / 기름 값도 내가 냈다, 톨비(톨게이트 비)도 내가 내랴' 등 직설화법이 압권. '봉숭아 학당'에서 '행복전도사'로 활약 중인 최효종은 18일 방송에서 "한국도로공사가 조수석에 앉은 여성이 톨게이트비를 낼 수 있도록 오른편에 요금함 설치를 검토 중"이라는 허무맹랑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 그는 "좋은 선배들과 함께 해 행복하다"고 웃었다.
"남녀가 느끼는 공감대를 살짝 긁어주는 게 웃음 포인트죠. 남자들의 투쟁이 아닌, 귀여운 앙탈로 봐주세요."(황현희)
'남보원'은 남자의 계절 가을을 맞아 여성들을 향해 본격적으로 '맹공'을 퍼부을 태세다. "추워지면 꼭 나오는 '오빠 추워' 아시죠. 겉옷을 벗어주면서도 이런 생각 한번쯤은 하잖아요. '벗어달라 강요 마라, 가을 밤엔 나도 춥다 / 나도 안에 반팔이다, 체지방은 니가 많다.'"
김종한 기자 tell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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