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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로 여는 아침] 빈 항아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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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로 여는 아침] 빈 항아리 1

입력
2009.10.19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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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어있는 항아리를 보면

무엇이든 그 속에 담아 두고 싶어진다

꽃이 아니라도 두루마리 종이든 막대기든

긴 항아리는 긴 모습의

둥근 항아리는 둥근 모습의

모 없이 부드럽고 향기로운

생각 하나씩을 담아 두고 싶어진다

바람 불고 가랑잎 지는 가을이 오니

빈 항아리는 비어 있는 속이 더욱 출렁거려

담아 둘 꽃 한 송이 그리다가

스스로 한 묶음의 꽃이 된다

누군가 저처럼 비어서 출렁거리는

이 세상 어둡고 깊은 가슴을 찾아

그 가슴의 심장이 되고 싶어진다

빈 항아리는 비어서 충만한

샘이 된다

● 비어 있다, 라는 한 순간은 얼마나 다음의 충만, 아니 충만을 향해 나아가는 치열한 과정인가. 빈 것을 바라보는 눈은 얼마나 밝은 눈인가.

한 생명이 죽으면 사물을 지각하는 모든 인체의 기관은 구멍이 된다. 항아리라는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는 구멍. 그 구멍에는 모든 것이 들어올 수 있다. 험악한 이데올로기, 죽음, 폭력, 폭력의 기억들, 모든 사나운 것들.

하지만 이런 것도 들어올 수 있다. '스스로 한 묶음의 꽃이 된다'의 순간. 모든 생이 비어서 비어서 무궁의 구멍이 될 때라도 사람이여, '빈 항아리는 비어서 충만한 샘이 된다'.

허수경ㆍ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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