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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담금질… 기능이 미래다] 제1부 '무늬만 기능강국' 코리아를 고발한다 (1) 너도나도 대학진학, 무너진 실업계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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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담금질… 기능이 미래다] 제1부 '무늬만 기능강국' 코리아를 고발한다 (1) 너도나도 대학진학, 무너진 실업계 교육

입력
2009.10.19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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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2학년 이지태(17ㆍ가명)군의 하루는 길고 고되다. 오전 7시40분까지 등교해 오후 4시쯤 수업을 마치면 쏜살같이 독서실로 달려간다.

국ㆍ영ㆍ수 위주로 독서실에서 공부하다가 오후 7시가 되면 학원을 가거나 과외를 받기 위해 귀가해야 한다. 학원과 과외가 끝나는 시간은 오후 10시. 배운 걸 복습하고 이것저것 정리하고 나면 12시가 다 돼서야 잠자리에 들 수 있다.

그래도 학원에서 주 3회 수학 과외 하나만 받았던 지난해까지는 견딜 만했다. 아무리 공부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자 올해부터는 일주일에 두 번씩 집에서 영어 과외까지 받기 시작했다.

이군은 "좋아하는 농구나 야구를 할 시간이 없어져 스트레스가 많지만, 내신성적을 올리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전문계 고등학교인 서울의 한 공고 자동차학과에 다니는 이군의 하루는 여느 인문계고 학생과 다를 게 없다.

취업은 뒷전, 대학진학에 올인

전문적인 직업 교육을 통해 기능인을 양성해야 하는 전문계고 교실이 대입 준비반으로 전락하고 있다.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는 학생들이 90% 이상을 차지하면서 교사들 사이에선 '계열파괴'라는 말이 공공연히 회자되고 있고, '기능인의 산실'이라는 예전의 명성은 무색해진 지 오래다.

지난 6일 서울의 또 다른 전문계고인 A고등학교. 2학기 중간고사가 시작된 이날 오전 시험을 마친 학생들이 이튿날 있을 시험에 대비하기 위해 서둘러 집과 독서실로 향했다. 예전 같으면 취업을 나간 학생들로 한산했을 고3 교실에도 결시생은 거의 없었다.

A고의 고3 담임 교사인 신모씨는 "7, 8년 전만 해도 이 맘 때쯤이면 취업을 나간 학생들로 교실에 빈 자리가 눈에 많이 띄었고, 선생님들도 학생들의 취업 때문에 각 기업체 인사담당자들을 만나느라 분주했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죠. 대부분의 학생들이 대학 진학을 원하기 때문에 내신경쟁이 뜨거워요. 취업을 하는 학생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상황입니다."

전문계고라고 해서 사교육 열풍이 비켜가지는 않는다. 이지태군처럼 학원을 다니거나 과외까지 받는 학생이 한 반(정원 약 30명)에 평균 5~6명쯤은 된다는 게 교사들의 전언.

이군의 담임인 권모 교사는 "전문계고지만 입학 때부터 취업을 생각하는 학생들은 한 반에 두세 명도 안 된다"며 "대부분은 처음부터 대입 동일계 전형을 노리고 진학하는 학생들"이라고 말했다.

대학 진학이 목표다 보니 재수생도 적잖이 나온다. 지난해 대학 진학에 실패하고 재수 중인 서울의 한 명문공고 출신 정모(19)씨는"재수를 해서라도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고졸 학력으로 취업을 하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한다"며 "오히려 재학 중에 조금이라도 내신 성적을 올려 놓지 못한 게 아쉽다"고 말했다.

권 교사는 "막상 기술을 익혀 취업을 한 학생들도 고졸이라는 핸디캡 때문에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해 고민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며 "게다가 2012년부터 병역특례인 산업기능요원제도까지 폐지될 예정이라 전문계고 학생들의 취업은 더욱 어려워 질 것"이라고 걱정했다.

같은 재단 기업서도 채용 외면

전문계고 학생들이 대입전선에 뛰어든 데는 학력차별과 기능인력에 대한 낮은 사회적 인식이 크게 작용했지만, 취업을 하려고 해도 취업이 안 되는 암울한 현실도 한몫을 했다.

관광 특성화고인 B고 교사 오모씨는 "학생들의 취업에 도움이 될까 싶어 3년 동안 한국관광공사를 찾아 산학 협력을 신청했지만 매번 퇴짜를 맞았다"며 "공공기관조차도 전문계고를 등한시해 제대로 된 논의조차 못 해봤다"고 하소연했다.

"학생들 대부분이 대학 진학을 원하는 상황에서 아무리 취업을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녀 봐야 소용이 없어요. 심지어 학교와 같은 재단의 동일계열 기업에 취업을 하려고 해도 여의치가 않을 정도로 현실의 벽이 높습니다. 취업해봤자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대학에 진학하는 게 작금의 현실이에요."

이러한 위기 상황을 입증하듯 정부는 2000년 '실업계 고등학교 육성정책'을 비롯해 지난해에는 '한국형 마이스터고 도입 육성방안'에 이르기까지 여러 대안과 정책들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학력차별과 기능직에 대한 경시풍조 등 사회적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이 나오지 않는 한 이런 정책들은 근시안적인 대안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일선 교사들과 학생들의 한결 같은 목소리다.

■ 전문계고 출신 73%가 대학행

전문계고 졸업생의 대학 진학률이 매년 급증하는 반면 취업률은 점점 저조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18일 교육과학기술부에따르면, 전문계고의 취업률은 2000년 51.4%에서 2003년 38.1%로 낮아진 후 2004년 33%, 2005년 27.7%, 2006년 25.9%, 2007년 20%, 2008년19.1%로 매년 하락추세를 보였다.

이에 반해 대학 진학률은 1990년 8.3%에서 2000년 42%로 훌쩍 뛰어 오른 후 2008년 72.9%까지 급증, 인문계고의 진학률 87.9%와 15% 포인트 밖에 차이 나지 않았다. 2008년 현재 전문계고는 학교수 697개에 학생 48만명으로, 학교수 1,493개에 학생 수140만명인 인문계고의 3분의 1 규모다.

교육과잉으로 인한 우리나라의 학력 인플레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 달 발표한 'OECD 교육지표'에서도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2007년 현재 우리나라의 4년제 대학진학률(A유형)은 61%로, 이른바 기술 강국으로 꼽히는 독일 34%, 스위스36%, 일본46%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

전문대, 교육대, 산업대 등 직업지향 고등교육기관(B유형)의 진학률도 50%나 돼 OECD 평균15% 를 크게 웃돌았다. 독일은 B유형 진학률이 13%, 스위스는 16%, 일본은 30%에 불과했다.

■ 특성화고 목표도 '대학'

기존 실업계 고교의 대안적 학교 모형으로 1998년 도입된 특성화 고교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특성화고는 디자인, 정보처리, 요리, 관광, 만화, 애니메이션등 전공분야를 세분화해 체험 위주의 교육을 실시함으로써 해당분야의 전문인력을 양성한다는 게 설립 취지였다.

하지만 실제 학교들은 현장 교육보다는 대학진학에 몰두 하고 있는 형편이다. 특히 대학에 관련 전공학과가 있어도 일부 특성화고에서는 진학이 쉽지 않아 특성화라는 이름 자체가 무색하다.

특성화 고교인 C고가 전형적인 예이다. 전공을 살려 동일계로 진학하는 학생이 한반에 한두 명에 불과하고, 나머지 학생들은 고교 시절 전공과 관련없는 학과를 선택해 대학에 간다.

이학교 3학년 최모(18)양은 "동일계 진학을 원해도 인문계 학생들과 경쟁해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다"며 "대부분의 특성화고 학생들이 3년간 배운 것과 전혀 관계 없는 전공을 선택해 진학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직업교육진흥국민연대와 권영길 의원(민주노동당)이 최근 조사한 전국 16개 특성화고 졸업생의 연도별 진로 현황 비교에 따르면, 2006년 동일계 취업 학생이 6명이었던 전남의 골프 관련 특성화고는 올해는 14명의 졸업생 전원이 대학 진학을 한 것으로 파악됐다.

대구의 정보화 관련 특성 화고 역시 동일계로 취업한 학생이 2006년 32명의 졸업생 중 3명에서 올해는 29명 졸업생 중 단 한 명도 없었다.

정부는 이런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마이스터고를 육성한다는 방침 이지만, 교육 현장에선 특성화고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다.

충남의 한 전문계고는 올해 학생들의 취업률이 3%도 안 되고, 동일계 취업률도 1.5%에 불과한 상황에서 마이스터고 지정을 받았다.

막대한 예산을 들여 마이스터고를 만든다고 해도 기초적인 인프라가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오히려 전문계고의 서열화만 낳을 수 있다는 게 현장 교 사들의 지적이다.

전교조 실업위원회 소속의 한 교사는 "직업 교육 전반에 대한 진단과 분석, 산학 협력등이 선행 되지 않은 상태에서 마련된마이스터고 육성 방안은 기능인 양성 역할에 한계가 있다"며 "마이스터고 정책을 원점에서 재검토 하는 것이 필요 하다"고 말했다.

김성환기자 bluebird@hk.co.kr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 "기능직 선택 만족" 75%

'마이스터'(Meister)들의 삶은 보람있고 행복했다.

국제기능올림픽에서 금ㆍ은ㆍ동메달을 땄던 기능명장(技能名匠)들은 기능의 미래에 우려감을 나타내면서도 자신이 기능직을 선택한 것에 대해서는 대부분 만족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일보가 14~16일 여론조사 전문기관 월드리서치에 의뢰, 역대 국제기능올림픽대회 메달리스트(468명)를 대상으로 1대1 전화 설문 조사를 실시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250명 가운데 51.6%가 기능직 선택에 대해서 '매우 만족한다'고 답했다. 또 '다소 만족하는 편이다'는 답변도 23.6%나 됐다. 이에 비해 '보통이다'고 답한 경우는 16.8%에 그쳤고, '만족하지 않는 편'이거나 '전혀 만족하지 않는다'는 답변은 8.0%에 불과했다.

국제기능올림픽대회 전체 메달 리스트를 대상으로 이러한 전수 조사가 실시된 것은 처음이다. 특히 통상적인 예상과는 달리 기능인의 긍정적 측면이 부각된 조사결과여서 더욱 주목된다.

기능직에 만족하는 이유(중복 응답)에 대해선 '적성에 맞아서'라는 응답이 31.9%로 가장 컸고, '취업이 잘 돼서'(15.4%), '전문 기술에 자부심이 있어서'(14.9%), '하고 싶은 일이어서'(10.1%)라는 대답이 그 뒤를 이었다. 반면 만족하지 못하는 이유로는 '기능직을 대우하지 않아서'라는 답변이 35%로 가장 높게 나타났고, '소득이 적어서'(20.0%), '사회 분위기가 기능직을 천대해서'(10.0%) 등의 응답도 나왔다.

이러한 높은 만족도는 자신의 자녀가 기능직을 선택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69.2%가 긍정적이라고 답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부정적이라는 반응은 30.4%에 그쳤다. 긍정적인 이유(중복응답)로는 '취업하기 좋을 것 같아서'(15.6%), '자녀의 적성에 맞으면 괜찮아서'(13.3%), '평생 일을 할 수 있어서'(12.1%)라는 장점들이 열거됐다. 부정적인 이유로는 '기능직을 우대하지 않아서'(39.5%), '기능직 일이 힘들어서'(21.1%) 라는 대답이 나왔다.

다른 분야로 옮긴 경우도 적었다. '이직 경험이 있느냐'는 질문에 91.6%가 '없다'고 답해, 기능명장들은 거의 대부분이 평생을 자신의 전문 분야에 종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제기능올림픽대회 메달 획득이 경력 또는 성과 평가에서 도움이 된 정도는 묻는 설문에는 '도움이 됐다'는 답변이 44.4%로 가장 많았지만 '도움이 되지 않았다'도 29.6%였다.

우수 기능 인력 양성을 위해서 가장 힘써야 할 일(중복응답)에 대해선 '기능직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꿔야 한다'(15.6%)는 지적이 가장 많았고, '기능직에 대한 우대 정책'(14.4%), '기능직에 대한 적극적인 홍보'(13.6%), '기능직에 대한 취업 보장'(10.8%) 등이 그 뒤를 이었다.

한편 3명중 1명(29.2%)은 고졸 기능직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은 적이 있다고 답했고, 이러한 메달 리스트 가운데 78.1%는 결국 대학으로 진학하거나 진학 준비를 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국제기능올림픽 메달 수상자들에게 지급되고 있는 기능장려금에 대해서는 '만족하지 못하는 편'(36.8%)이 '만족하는 편'(23.2%)보다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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