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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여자도 군대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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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여자도 군대 가자"

입력
2009.10.19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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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빅토리아 여왕시대(1837-1901년)에 여성에게는 수학을 가르치지 않았다고 한다. 믿기 어렵지만 "뇌 용량이 적어 과열 우려가 있다"는 이유였다. 젠틀맨 사회답게 여성 보호가 명분이지만, 남성의 지적 우위를 지키기 위한 음흉한 위선이었다.

요즘 세상에 드라마 속의 가수 비처럼 여성의 지적 능력을 조류 따위에 빗댔다가는 공공의 적이 되기 십상이다. 그래서인지 신체 능력을 문제 삼는다. 영화 에서 군 지휘부가 터프한 여군 장교 데미 무어의 전투수행 능력을 부인하는 것도 남성의 고유 영역을 지키려는 집단 심리가 바탕이다.

가산점 논란 얽힌 힘겨루기

목숨 거는 일을 도맡으려는 남자들이 어리석다. 그러나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군대와 전투는 남성의 사회적 권력을 떠받치는 헤게모니적 남성성을 상징한다. 최근 다시 나온 "여자도 군대 가자"구호는 이 헤게모니에 도전하는 것이다.

여성의 징병 면제는 어찌 보면 '수혜적 차별'이다. 그러나 페미니즘 입장에서는 무력사용 등 다양한 교육 훈련과 직업적 경험의 기회를 막는다. 또 군복무 취업 가산점이나 공무원 호봉 산정 등으로 사회적 평등권을 침해한다. 그러니 여성에게도 군복무와 대체사회복무 기회를 부여, 공적 영역의 동등한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는 논리다.

이런 요구는 2003년 페미니스트 저널 <이프> 가 처음 제기했다. 여성차별 극복과 군대문화 개선을 위해 바람직하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주류 여성계도 "여성은 출산과 육아로 국방에 기여하고 있어 이중부담이 된다"고 반대한다. 남성의 군복무 불이익은 병영 민주화와 군필자 지원 등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2006년'대한민국 남성'이 여성의 병역 면제는 남성 차별이라며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국방부 장관은 헌법재판소에 낸 의견서에서"남자만 징집하는 것은 남성이나 여성 차별이 아니다"고 항변했다. 징집 대상은 국가안보상황과 재정능력 등을 고려해 결정할 사항이며, 최적의 전투력 확보 목적과 병력수급 사정에 비춰 여성까지 징집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여성 징집은 예산 문제와 내무생활 여건 등 많은 어려움이 생긴다고 덧붙였다.

이'남성 차별'헌법소원이 계류 중인 가운데'여성 차별'주장이 새삼 크게 들리는 상황은 어지럽다. 좁은 시각으로 보면, 위헌 결정이 난 군복무가산점을 다시 도입하려는 움직임과 얽힌 힘겨루기 성격이 짙다. 그러나 눈을 크게 뜨면, 군복무와 군대의 역할에 관한 사회 인식이 달라진 현실을 일깨우는 듯하다. 군복무 불이익 보상의 힘든 숙제를 돈 안 드는 가산점으로 풀려는 이들에게 "조류"라고 외치는 소리로 들리기도 한다.

여론은 가산점제 찬성이 많다. 그러나 군 미필자와 장애인 등 소수자 차별은 위헌이라는 헌재 결정에 비춰 의미가 없다. 가산점을 낮춘다고 될 일이 아니다. 과거 공무원시험 등에서 혜택을 본 남성도 전체 군필자의 일부이다. 따라서 가산점 '성 대'은 공연한 소모전이기 쉽다.

여성 군복무 기회 넓혀야

여성 징병도 현실적 대안은 아니다. 여성을 징집하는 나라는 이스라엘뿐이다. 우리사회 논란에서 찬성이 많은 듯하지만, 정서에 치우친 반응이 아닌가 싶다. 대학생과 구직자 대상 여론조사에서는 여성의 56%가 "여자도 군에 가야 한다"고 답한 반면, 남성은 29%만 찬성했다. 치열한 취업 경쟁의 당사자들은 냉철하게 이해 득실을 헤아린다.

그러면 떠들썩한 논란만 하다 말 것인가. 여성과 미필자 등에게 불이익을 주지 않으면서 군필자를 실질적으로 지원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와 함께 여성도 부사관과 장교뿐 아니라 일반병 복무를 지원할 수 있는 쪽으로 가야 한다. 페미니즘의 주장이 아니라도, 군이 압도적 남성 우위 집단으로 머무는 것은 세상 변화와 어울리지 않는다. 군과 사회의 남녀 구도가 같을

수는 없지만, 서로 접근하는 것이 양쪽 모두에 이롭다.

강병태 논설위원실장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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