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촛불시위의 전개과정을 지켜봤다면 이 남자가 낯설지 않을 것이다. 안진걸(37) 참여연대 사회경제국장. 지난해 7월 그는 전경들에 의해 강제로 전경 버스에 태워졌다. 입이 틀어 막히고 두 팔이 비틀린 채로 그가 전경 버스에 태워지는 스냅 사진은 촛불시위를 상징하는 장면의 하나로 기록되고 있다.
당시 참여연대 광우병대책회의 조직팀장이던 그는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야간집회 등을 주도했다는 혐의로 구속됐다. 결국 그는 50일만에 보석으로 풀려났지만, 이 사건은 이른바 '신영철 파동'으로 이어지면서 우리 사회에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신영철 파동이란 안 국장이 구속 도중 재판부에 야간집회를 금지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에 대해 위헌법률제청을 신청하자, 신영철 당시 서울중앙지법원장(현 대법원 대법관)이 촛불사건 담당 단독 판사들에게 집시법 위헌법률제청에도 불구하고 촛불사건 관련 재판을 속행하라는 압력을 넣은 사건을 말한다. 헌법재판소는 지난달 집시법의 야간 옥외집회 금지조항이 헌법불합치라고 결정해 결국 안 국장의 손을 들어준 셈이 됐다.
안 국장은 이달초에는 환경부를 상대로 발암 우려 물질인 브롬산염 생수를 시판한 생수회사의 이름을 공개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앞서 6월 환경부는 전국에 유통중인 생수 79종 가운데 7개 제품에서 국제 기준치(0.01mg/l)를 초과하는 브롬산염이 검출됐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업체명은 공개되지 않았다.
그는 "환경부가 '문제가 된 제품은 모두 회수했다'는 이유를 내세우고 있지만 최근 국정감사에서 문제 제품의 회수율이 65%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며 "조만간 합리적인 법원 결정이 내려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안 국장은 그간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문제 제기로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둬왔다. 지난달 SK텔레콤 등 이동통신사가 가입비와 장기 가입자에 대한 요금 일부를 할인하겠다는 발표를 하도록 이끌어낸 것도, 2007년 지하철 손잡이를 어린이와 노약자를 배려해 낮춘 것도 그가 주도했다.
그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문제를 제기한 끝에 제도가 개선되고,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혜택을 누리는 것을 보면서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다.
그러나 시민 운동가는 직업으로서는 춥고 배고프다. 그는 서울 상일동의 아담한 아파트에서 통인동 참여연대 사무실까지 지하철로 출퇴근한다.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고 때로는 구속되는 것도 각오해야 한다. 이 남자는 왜 시민 운동가를 직업으로 선택했을까.
"대학(중앙대) 재학 시절부터 모든 구성원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지내는 사회를 만드는 일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이 직업에 보람을 느낍니다. 조금만 아끼고 살아가면 문제 없습니다."
다행히 최근 시민운동가를 직업으로 선택하려는 젊은이들이 많아져 그는 기쁘다고 털어 놓았다.
"미국은 비정부기구(NGO) 등 비영리 섹터가 전체 고용의 8%를 차지하고 있고, 통계국의 직업 분류표에도 별도로 분류돼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점차 시민운동가가 직업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그는 "한국의 통계청이 올해초 시민단체를 직업 분류표에 신설 항목으로 넣었다"고 귀띔했다. 이 분야 취업을 꿈꾸는 대학생들에게 그는 "여행을 자주 하고, 책을 많이 읽고, 생각을 깊게 하라"고 권했다.
이민주 기자 mj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