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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어느 운 나쁜 해의 일기' 윗부분은 에세이, 아래쪽은 소설 '독특한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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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어느 운 나쁜 해의 일기' 윗부분은 에세이, 아래쪽은 소설 '독특한 구성'

입력
2009.10.18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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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M 쿳시 지음ㆍ왕은철 옮김 민음사 발행ㆍ264쪽ㆍ1만4,000 원

아파르트헤이트로 비롯된 흑백 갈등 등 남아공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다루며 서구문명의 위선을 깊이있는 통찰로 비판, 2003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남아공 작가 J M 쿳시(69). 그는 현실에서는 미국의 부시, 호주의 존 하워드 등 신자유주의적 정치지도자들에 대한 비판적 발언을 마다하지 않으면서도, 소설적으로는 문학적 상상력이 현실에 속박되지 않아야 한다는 반(反) 리얼리즘적인 태도를 견지해왔다.

쿳시의 2007년 작 <어느 운 나쁜 해의 일기> 는 현실문제에 대한 입장을 어떻게 '문학적으로' 표현할 것인가에 대한 작가적 고뇌가 녹아있다. 그것은 텍스트의 병치라는 아주 독특한 실험적 기법으로 실현된다. 이 작품에서 쿳시는 자신의 분신으로 여겨지는 JC라는 노작가가 쓴 '강력한 의견들'이라는 에세이와, 2개의 소설 텍스트를 나란히 진행시킨다.

두 소설의 화자는 JC의 작품을 타이핑해주는 매력적인 필리핀 여성 안나와 안나의 정부인 신자유주의자 앨런이다. 책은 각 페이지 윗부분에 있는 에세이만 따로 읽어도, 아랫부분에 있는 소설의 텍스트만 따로 읽어도, 혹은 아래 위 텍스트를 동시에 읽어나가도 무방하게 편집돼 있다.

JC의 에세이는 국가는 어떻게 정당성을 갖는가, 민주주의는 과연 최고의 정치제도인가, 반(反) 테러리즘법을 제정하고 검열을 강화하려는 호주는 과연 민주적인가 같은 무거운 정치ㆍ사회적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반면 안나가 화자인 소설은 일종의 러브스토리로 자신을 유혹하려는 JC 와 정부 앨런 사이의 미묘한 감정의 실랑이, 점차 JC의 견해에 동화되어 가는 안나의 내면을 그린다. 그리고 앨런이 화자인 소설에서는 안나와 공모해 JC의 막대한 재산을 가로채려다 실패하고 안나와도 헤어지는 앨런의 속물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제각각인 것 같으면서도 3개의 텍스트가 묘하게 영향을 주고 교호하는 과정은 작가 쿳시가 사랑한다는 바흐의 대위법적 기법을 연상시킨다. 독자들은 '내가 그녀에 대해 어떤 식으로 생각을 했다면 그것은 달콤하다는 것이었다. 짠 것에 반하는 달콤함, 은에 반하는 금, 공기에 반하는 지구' 같은 문장이 품고 있는 연애소설의 달콤함을 맛볼 수 있다.

더불어, 테러와의 전쟁을 주도한 부시 행정부를 지지하는 미국인들을 향해 "명예를 지키는 건 어느 정도까지는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는 것과 같지만, 역사의 심판대에 더럽혀진 손을 갖고 서지 않아야 하는 문제"라고 비판하는 작가의 지적인 힘까지 하나의 작품에서 동시에 경험하는 행운을 누릴 수 있다.

이왕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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