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경미 지음 문학동네 발행ㆍ328쪽ㆍ1만원
게으름을 찬양했던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 같은 이를 제외하면, 고래로 일하지 않는 청년은 좌우를 막론하고 공공의 적 취급을 받았다. 반대로 열심히 노력했지만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젊은이들에게는 동정 혹은 연민이라는 면죄부가 준비돼 있다. 그렇다면 능력이 있음에도 게으름을 자초하는 젊은이들은 어떨까. '부지런한 자=능력있는 자'라는 선입관이 완고한 이데올로기로 자리잡은 자본주의 사회, 그런 삶의 태도는 과연 정당성을 부여받을 수 있을까?
구경미(37)씨의 두번째 소설집 <게으름을 죽여라> 은 '백수로 살기'에 대한 한 편의 파노라마다. 짐작대로 구씨 소설의 주인공들은 비주류, 사회적 이단아로 취급받는다. 로커가 되겠다며 부모와 연을 끊지만 재능 부족 탓에 꿈은 이루지 못하고 인터넷 포르노 사이트에 사진을 올리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청년('뮤즈가 좋아'), 성적에 맞춰 대학에 갔고 시대적 수요에 맞춰 직업을 선택했으며 프로포즈도 아내에게서 받고 결혼한 40대 공무원('새로운 삶), 하루에 10통씩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쓰지만 취직을 못하자 할머니로부터 "게을러서 그런거야"라는 비난을 받는 젊은이('게으름을 죽여라'), 삶의 의미를 모르겠다는 이유로 회사를 그만두고 하루 열다섯 시간씩 잠을 자면서 잊혀질 만하면 주변 사람들에게 자살 예정 날짜를 알려주는 사내('잠자는 고양이') 등이다. 이들 모두는 '백수'로 뭉뚱그리기에는 색깔이 좀 다양하지만, 모두 비슷한 삶의 코드를 공유하고 있다. 게으름, 권태로움, 무기력함 등이 그것이다. 게으름을>
구씨 소설의 인물들은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의 박민규씨로부터 <부코스키가 간다> 의 한재호씨로 이어져온, '백수소설' 속 인물들과 닮은 듯도 하지만, 닮은 듯 다르다. 그들에게서 패배감은 엿볼 수 없으며, 사회에 대한 불만도 찾아볼 수 없다. 마음만 먹으면 직장을 가질 수 있지만 '다만 그러고 싶지 않아' 자발적 백수의 삶을 선택하는 인물도 있다. 이들에게는 꽉 짜여진 틀 안에서 남들의 기준에 맞춰 '열심히' 노력하지만 정작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모르며 살고 있는 이들에 대한 작가의 비판의식이 투영돼있다. 부코스키가> 삼미슈퍼스타즈의>
"왜 자기 생각을 남에게 강요하는 거지?"(148쪽) "의미 없는 삶을 왜 연장한단 말이오?"(164쪽) 같은 작중인물들의 진술은 이를 입증한다. 백수를 양산하는 사회에 대한 분노나 냉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성찰적 삶에 대한 지향성이 살아있다는 점에서 구씨 소설의 인물들은 좀더 깊은 의미를 획득한다.
작가는 대학 졸업 후 지역신문 기자, 논술회사 직원, 문학잡지 편집자 등 다양한 직장생활을 했다고 한다. 어느날 중곡동 집에서 강남 직장으로 향하는 출근길 지하철에서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나,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생각이 들었고 "나머지 삶은 내게 쓰는 것이 낫겠다"는 결심을 한 뒤 2006년부터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작가는 "직장도 없고, 남편도 없고, 자식도 없는 내게 소설은 나를 살려주는 생명줄과 같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그는 "소설도 쓰기 싫으면 두세 달씩 쓰지 않는다. 즐길 수 있을 때 즐기자, 하고 싶을 때 하고 하기 싫을 때 하지 말자는 것이 내 인생관"이라며 "나의 소설쓰기는 이런 삶의 태도에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인 셈"이라고 덧붙였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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