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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워킹 푸어, 빈곤의 경계에서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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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워킹 푸어, 빈곤의 경계에서 말하다'

입력
2009.10.18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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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K 쉬플러 지음ㆍ나일등 옮김/후마니타스 발행ㆍ548쪽ㆍ1만9,000원

"세차장에서 일하는 그 남자에게는 정작 자기 차가 없었다. 은행에서 지급 완료된 수표를 정리하는 일을 하는 그녀에게 통장에 남은 돈이라고는 고작 2달러 2센트 뿐이었다. 의학 교과서 원고를 교열해주고 시급을 받는 한 여성은 10년 동안 치과에 가지 못하고 있다."

세계 최강국 미국 사회에도 죽어라 일을 하지만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아무리 일을 해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들 미국의 워킹 푸어(Working Poorㆍ일하는 빈곤층)는 더 나은 미래를 향한 꿈과 희망을 잃어버린 채 하루 하루를 버티고 있다.

<워킹 푸어, 빈곤의 경계에서 말하다> 는 미국 워킹 푸어에 대한 심층 보고서다. 저자는 퓰리처상 수상 작가로 이 책을 쓰기 위해 워킹 푸어 수십 명을 5~6년에 걸쳐 관찰했다. 따라서 이 책은 관련 이론과 통계를 제시하기보다 그들의 일상과 생각을 주로 보여준다. 그것은 워킹 푸어가 겪는 빈곤이 몇 편의 이론과 한 두 마디의 말로 쉽게 규명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오하이오주 애크런의 YWCA 보육원에서 일하는 크리스티는 격주로 330달러의 보수를 받으며 어린 딸과 아들을 키우고 있다. 한 남자와 같이 살지만 그 사실이 밝혀지면 공영주택에서 쫓겨날까봐 비밀 동거를 하고 있다. 남자도 시급 7.4달러를 받고 정원사 보조 일을 했지만 겨울에는 실업자로 지낸다. 현재로서는 그녀가 가난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의 쇠락한 동네에 사는 데브라는 고용훈련센터에서 일을 배우며 취업의 꿈을 키웠다. 하지만 원하는 지게차 운전사가 되지 못하고 빵 공장에서 빵을 뒤집거나 봉지에 넣는 일을 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받는 돈이 시급 7.9달러. 그의 계좌에는 잔액이 거의 없으며 임금이 입금돼도 생필품 구입에 그날로 나가고 만다.

대형 마트에서 단순 업무를 하는 캐롤라인은 2년 과정의 대학 졸업장을 받은 백인이다. 인종적 차별이 없는데다 직장에서 성실하다는 평판도 받고 있다. 그러나 간절히 원한 승진에서는 번번이 누락됐다. 치아가 몽땅 빠졌다는 게 이유인데 그는 지난 10년간 가난 때문에 치과 진찰을 받지 못했다.

인종의 용광로라는 미국에는 다른 나라에서 건너온 노동자도 많다. 로스앤젤레스 한국식당에서 하루 12시간씩 주 6일 근무하는 한국 이주민 여성, 웨이트리스로 일하며 밤 12시가 넘어 퇴근하는 또 다른 한국 여성은 이 책에서 미국에서 살아가는 이민 워킹 푸어의 사례로 제시된다.

'최하층에서 태어나도 노력만 하면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다'는 신화는 워킹 푸어에게는 남의 이야기다. 책에 나오는 인물들은 가난에 지쳐 꿈을 잃어버린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워킹 푸어가 광범위하게 생기는 이유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정말 열심히 일하는데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 것을 보면 워킹 푸어는 사회적 문제다. 하지만 빈곤을 이기고 성공한 사람이 꽤 있는 것을 보면 그것은 개인 문제가 된다. 저자는 이에 대해 둘 모두가 이유라고 말한다. 현대의 여느 사회문제가 다 그렇듯, 빈곤 역시 개인과 사회 모두에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이유가 복잡하므로 해결방안도 복잡하다. 저자 역시 해결책 찾기의 어려움을 인정하면서도 '종합적 치료'를 강조한다. 임금구조, 건강보험, 육아, 주거환경, 학교교육 등 여러 요인을 모두 포괄하는 종합 방안을 마련해야 워킹 푸어 문제의 해결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와 기업을 통한 사회적 의무, 노동과 가족을 통한 개인적 의무를 통합해 대처하는 자세를 특히 강조한 것도 그 때문이다.

저자가 인정하듯 미국의 빈곤층은 그나마 형편이 나은 편이다. 끼니를 잇지 못해 목숨을 잃는 사람이 세계에는 여전히 많다. 마침 17일이 유엔이 정한 '세계 빈곤 퇴치의 날'이니 세계인의 빈곤을 생각하는 계기로 삼아도 될 것 같다.

박광희 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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