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대학 경제학과 2학년 김모(20)씨는 입학 후 마음 터놓고 얘기를 나눠 본 선배가 여태껏 1~2년 위 3명밖에 없다. 한 학년 정원이 70명에 달하지만, 진로에 관한 조언을 들을 수 있는 고학번 선배를 잠시라도 만난 것은 올 들어 단 한 번뿐, 지난달 열린 취업설명회에서였다.
최근 입학 후 처음으로 선후배가 모이는 과 체육대회가 열린다는 소식에 들떴지만, 당일 모인 40명 중 30여명은 1학년들이었다. 4학년 선배는 단 한 명도 볼 수 없었다. 김씨는"혹시 선배 얼굴을 볼까 했는데 괜히 나갔다 싶어 후회했다"고 씁쓸해 했다.
지난해 B대학 국문학과를 졸업한 김모(28)씨는 최근 과 후배의 메일을 받고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름도 모르는 1학년 후배가 "학교 생활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도와 달라"는 내용이었다. 김씨가 연락하자 후배는 "과방에 가봐도 텅 비어 있고 선배를 만날 수 없어 인터넷과 커뮤니티에 있는 이름을 보고 무작정 메일을 보냈다"고 사정을 설명했다.
학부제 도입과 취업 준비 등으로 대학 내 선후배간 교류가 갈수록 엷어지고 있다. 저학년 학생들은 "선배 얼굴이라도 한 번 보고 싶다"고 하소연할 정도다. 특히 학부 단위로 입학해 전공 선택을 앞둔 1학년생들은 진로를 조언해줄 '선배 찾기'에 골몰하고 있다.
저학년생들이 전공이나 진로 상담을 할 수 있는 통로는 그나마 학교측이 마련해주는 각종 설명회나 멘토 프로그램 등이다.
성균관대의 경우 4명의 상담사가 1학년 학부생을 상대로 진로 상담을 하고 있고 연세대는 1학년 학부생들에게 상담 교수를 지정해주는 '학사지도 교수제'를 운영하고 있다. 서울대는 아예 각 단대별로 1학점짜리'신입생 세미나'를 개설해 운영한다. 진로 상담을 강의 형태로까지 만든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프로그램도 생생한 경험담을 듣고 싶은 신입생들의 갈증을 풀어주기엔 미흡하다. C여대 강모(21)씨는 "학교측이 마련한 진로설명회에 가보면 그 과에서 배출한 성공한 선배들이 나와서 일방적으로 '과 자랑'하는 식으로 홍보하는 경우가 태반이다"며 "학교 프로그램 말고 선배들과 직접 어울려 진솔한 얘기를 들어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답답한 저학년생들이 스스로 '선배 모시기' 행사를 열기도 한다. 지난 5~8일 서울대 사회대에서 열린 '전공ㆍ진로 박람회'는 1~2학년생 15명이 팔을 걷고 나서 선배들을 불러 앉힌 행사였다.
사회대 9개학과 대학원을 찾아 다니며 후배 상담을 해달라고 사정해서 사회대 건물 로비에 '상담 부스'를 만든 것. 대학원생 15명이 교대로 부스에 앉아 학부생들의 전공 상담을 해주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행사를 기획한 박대현(20ㆍ경제2)씨는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해결할 통로가 부족해 우리가 직접 자리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서울대 대학생활문화원 임영진 상담원은 "경쟁 심화와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사회가 각박해지면서 학생들간 관계도 삭막해져 가는데, 대학 사회가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강희경기자 kbstar@hk.co.kr
김혜영기자 shi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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