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ㆍ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이 내년 7월께 발효되고, 한ㆍ미 FTA도 내년 중에 발효되면 외국어는 필수 아니겠습니까. 한ㆍEU 협정문이 23개국어로 번역 된다면서요. 그걸 다할 수는 없으니 결국엔 영어죠."
영어학원 원장이나 했을 법한 이 말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한국농어촌공사 홍문표 사장. 홍 사장은 올 초 직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신입직원 채용 때 토익점수 하한점수를 600점에서 700점으로 끌어올렸다.
홍 사장은 "영어점수 조건을 까다롭게 한 것을 두고 '농사 잘하면 되지, 농어촌공사서 영어는 무슨 영어'라는 말들이 심심찮게 돌았다"며 "이 같은 생각들이 농어촌을 피폐하게 했다"고 주장했다.
80년대 1,000만명을 웃돌던 농촌인구가 최근 300만명 수준으로 쪼그라들고, 그마저도 60세 이상 노인들이 태반인데다 경제 문화 각 분야에서 도시와 격차가 벌어진 것은 이 같은 안일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덕분에 공기업 경영평가 때마다 농어촌공사는 하위권에서 맴돌았다.
하지만 지난해 9월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홍 사장이 취임하면서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이뤄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대통령 표창'까지 수상,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홍 사장은 "직원 6,000여명중 15%에 해당하는 인원을 줄일 것을 제안하고, 당사자인 노조와 직접 논의했다"며 "누가 떠날 것인지를 결정하는 일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지만 '고통분담형 구조조정'을 통해 그 같은 성과를 올릴 수 있었다"고 말했다. 떠나는 800여명에게 퇴직금과 별도로 남은 직원들이 급여삭감 등으로 십시일반 위로금을 모아 전달했다.
모든 직원이 참여해 86억원을 모았을 정도다. 홍 사장은 "날카롭고 차가운 느낌의 '메스'에 비유되는 구조조정과 개혁에 '감성'을 불어넣은 덕분"이라며 "이를 통해 오히려 내부는 더욱 결속됐고, 건전한 긴장감이 흐르게 됐다"고 자평했다.
조직 정비를 원만하게 마친 홍 사장의 다음 목표는 우리 농업의 해외 진출. 사회간접자본(SOC) 기술의 수출과 해외 농업자원 개발에 역점을 둘 계획이다. 홍 사장은 "내년 하반기 거의 모든 FTA가 발효하게 되면 우리 농업도 밖으로 나가야 살 수 있다"며 "농식품 수출가공 단지를 건설하고 기후변화에 대비한 농업 SOC 기술 수출을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의원을 지내기도 했던 홍 사장은 마지막으로 "지금과 같은 도농 격차로는 한국이 절대 선진국이 될 수 없다"며 "국회도 정부도 농어민들을 식량 생산 주체로 인정하고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민승 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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