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다닐 여유 없이 한 해가 저물어 간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려 지난 여행의 사진첩이나 뒤적이고 있노라면 마음은 더 그립다.
여행의 추억은 무엇으로 남는가? 사진, 동행한 사람들과의 추억,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대화, 햇살과 온도와 습도, 눈앞의 풍경 등 여러 요소가 있을 것이다. 나는 아무래도 직업이 음식 관련 일이라 그런지 여행의 기억은 혀로 남는 경우가 많다.
가령 '아, 거기가 어디였더라? 날씨 진짜 좋아서 자전거 빌려 타고 한 시간쯤 돌았었는데…' 하고는 가물가물한 포구의 이름을 되짚다가도, 자전거를 타고 나서 동네 구멍가게의 평상에 앉아 마신 맥주가 먼저 기억나서 자연스레 포구의 이름도 생각나게 되는 식이다.
'그때 광양을 먼저 갔었나, 통영을 먼저 갔었나?' 여행을 마친 후에 여행기 원고를 쓸 일이 있을 때도 한참을 헷갈리다가 '아 맞아, 불고기가 먼저였고 그 다음이 갯장어였지' 하는 식으로 동선을 바로잡아 기록한다. 제주에 다녀온 기록이 적힌 내 수첩에는 '갈치조림→방파제 커피믹스→한라산(소주)→몸국→동문시장 도너츠→중문 찐빵…' 이렇게 흔적이 남게 된다.
근래 몇 년 간 늘어난 외국인 관광객들은 이제 서울 도심의 호텔에만 머물지 않는 것 같다. 인터넷의 발달로 정보가 다양해져서인지, 호텔보다는 저렴하고 살가운 홈스테이로, 2층 건물보다는 한옥으로, 서울 말고 전주로 경주로 제주로 다니는 이들이 늘고 있다. 지리산 둘레 길을 걷는 영국인 부부, 담양의 온천을 찾는 일본인 가족, 제주 하이킹을 떠나는 한 무리의 미국 학생들을 이제는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흐뭇하면서도 걱정되는 것이 한 가지 있다. 저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다녀간 다음, 한국은 어떤 맛으로 추억될까? 대한민국 팔도의 맛과 간이 다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 떠날 수 있을까?
맵고 짠 음식 일색에 의사소통이 어려웠고 바가지와 불친절을 경험했다고 기억하지는 않겠지? 우리나라의 명주도 많은데 한 잔씩 마셔 보고 돌아가는 걸까? 갑자기 마음 속이 분주해진다. 우리나라를 체험하고 싶어서 길게는 하루 가까이 걸리는 비행기 노선을 마다 않고 오는 이들도 있는데, 과연 그들이 '다시 찾고 싶은 여행지'로 느끼며 떠날 수 있을지.
사람의 행복은 입에서 시작한다. 입으로 좋은 음식을 먹으면, 입으로 좋은 말이 나온다. 우리가 이미 갖고 있는 맛있는 메뉴들이 세계의 여행객들을 되돌아오게 만드는 마법을 부려 줄 때다
박재은 푸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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