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태권도란 뭐냐"고 묻자 "태권도는 대한민국이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과장된 표현이라 생각했는지 씩 웃었지만 표정은 진지했다. 조정원(62) 세계태권도연맹(WTF) 총재는 태권도를 한국 전통 무예라는 틀을 넘어서 한국 문화와 정신 세계를 전달하는 매개체라고 생각했다.
15일 새벽(한국시간) 총재 선거에서 3선에 성공한 조정원 총재를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만났다. "결국 태권도는 대한민국이다"고 강조한 조 총재는 "태권도를 통해 세계가 한국 문화와 한국 언어에 익숙해진다. 태권도 전파는 한국을 널리 알리는 일이자 나라를 사랑하는 일이다"고 강조했다.
화합과 상생의 태권도정신
조 총재는 13일 밤 치러진 선거에서 총 투표수 150표 가운데 약 70%인 104표를 얻어 인드라파나 후보(45표)에게 압승을 거뒀다. 흑색 선전이 난무한 터라 인드라파나 측근은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그러나 조 총재는 당선 소감을 밝히면서 "상대가 공약한 좋은 정책에도 귀를 기울이겠다"며 화합을 내세웠다.
조 총재 주변에는 사람이 끊이질 않았다.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한 외국 선수들은 "닥터 조와 함께 사진을 찍고 싶은데 가능하냐"며 몰렸다. 손에 쥔 핸드폰 통화가 끝나자 조 총재 얼굴에는 미소가 번졌다. "Sure, Why not? Come here!(물론, 찍어야죠. 이리 오세요.)"
사진을 찍는 사이 틈틈이 인터뷰를 진행했다. "선거 과정에서 말도 안 되는 흑색선전이 난무할 땐 시시비비를 철저히 가리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잘못을 질책하기보단 태권도가 올림픽 스포츠로 발전하는 게 중요하다." 대승적인 차원에서 아군과 적군을 가리지 않고 모두 태권도 가족으로 생각하겠다는 뜻이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앞으로 하계올림픽 핵심 종목 25개를 선정할 예정이다. 태권도가 핵심 종목이 되려면 국제화가 필수라는 게 조 총재의 생각. "태권도는 집안 싸움으로 한국인 몇 명이 움직이는 스포츠라는 부정적인 인식이 많다. 국제화를 통해 WTF가 명실상부한 국제 스포츠 기구라는 사실을 보여주겠다." 태권도를 바라보는 시각이 잘못됐다고 설득하기보단 오해의 소지를 아예 없애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개혁은 이제부터 시작
올림픽 퇴출설에 시달리던 태권도는 조 총재 취임 이후 5년간 많은 변화가 있었다. WTF 재정과 행정이 투명해졌고, 발차기 난이도에 따라 1~3점을 주는 차등점수제도를 만들었다. 석연치 않은 심판 판정을 없애고자 동영상 판독과 전자호구를 도입했다.
플래시 세례에서 벗어나자 조 총재는 "앞으로 여러분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개혁에 속도를 내겠다"고 약속했다. 상업적인 목적이 개입돼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전자호구를 원점에서 재점검하고, 심판 판정에 대한 시시비비를 철저히 가리겠다고 다짐했다.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밝혔지만 그동안 풀지 못한 숙제도 꽤 많다. 우선 선거 과정에서 쌓인 정부, 대한체육회와의 오해를 풀어야 한다. 한국이 태권도 종주국이란 특성상 관계 기관과의 원활한 의사소통은 필수다.
WTF 사무가 지나치게 행정 중심이란 지적도 있다. 이에 조 총재는 "각 분야에서 능력과 경험을 갖춘 분을 초빙해 위원회 중심으로 연맹 일을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경기와 관련된 업무에는 태권도인을 중용하고, 행정과 관련된 업무는 국제화에 앞장서겠다는 뜻이다.
"무도 태권도는 결국 한국인이 책임져야 한다. 그러나 스포츠 태권도엔 국제화가 필요하다. 태권도 기술 개발은 국기원에 맡기고 스포츠로서 올림픽에 뿌리를 내리는 건 WTF가 책임지겠다."
코펜하겐(덴마크)=이상준 기자 j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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