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적 시민단체의 승부수가 될 것인가, 부메랑이 될 것인가.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등 한국의 진보적 시민운동의 주축 인사들이 '희망과 대안'이라는 모임을 통해 사실상 현실정치 참여를 선언하면서 엇갈린 반응이 나오고 있다. 2000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큰 파장을 낳았던 낙천ㆍ낙선운동에 비견되는 정치적 흐름이 생겨날 것이란 기대가 있는 반면, 시민단체 스스로 입지를 축소시킬 것이란 우려도 적지 않다.
2000년 낙선운동만큼 영향력 갖을지 의문
"중립성 타격·보수세력 역풍 초래" 목소리도
시민단체들은 과거 낙천ㆍ낙선운동 등을 통해 사실상 선거 개입 활동을 펼치긴 했지만, 후보를 내는 등의 직접 참여와는 엄연한 선을 그었다. 시민사회의 중립성을 훼손해 정치권에 대한 시민단체의 감시 역할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2004년 국회의원 선거 당시에도 시민단체 일각에서 '특정후보 당선 운동'이 제기됐지만, 내부 논란으로 지지부진했던 것도 이런 맥락에서였다.
이처럼 현실 정치에 대한 직접 개입을 자제해왔던 이들이 지방선거 후보자를 발굴하고 야당 공천에도 영향력을 행사하겠다고 나선 것은 최근 위축되고 있는 시민사회 상황과 무관치 않다. 현 정부 들어 정부 지원금 중단, 기업 후원금 축소, 박원순 상임이사에 대한 국가정보원의 소송제기 등 진보적 시민단체에 대한 압박이 갈수록 강해진다는 판단이 시민단체들로 하여금 "앉아서 당할 수만은 없다"며 정치참여를 고민하게 했다는 것이다.
하승창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운영위원장은 "시민단체에 대한 정부 탄압이 본격화되면서 올해 여름부터 모임 발족을 본격적으로 준비했다"고 말했다. 이 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정대화 상지대 교수(전 총선시민연대 대변인)도 "'희망과 대안'의 배후는 결국 이명박 대통령"이라면서 "이 대통령이 민주주의를 퇴보시켜 결국 과거 낙선운동의 연장선상에서 당선운동으로 나가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모임에는 참여연대,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희망제작소, 민변, 한국YMCA 등 대표적 시민단체의 지도급 인사들이 참여해 진보적 시민단체 전반을 아우르고 있다. 희망과 대안측은 다만 시민단체가 직접 참여하는 대신 개인 회원 자격으로 참여토록 해 최소한의 중립적 틀은 남겨뒀다.
하지만 "민주주의 회복"이라는 시민단체들의 절박한 의지와는 달리, 현실정치에 대한 직접 개입이 기존 입지마저 위태롭게 할 수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시민단체들이 현실정치의 당사자로서 나설 경우 공정한 감시자 역할을 할 수 없고, 자칫 국민들에 의해 기존 정치인들과 똑같이 폄하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희망과 대안측이 계획하고 있는 '좋은 후보 만들기 운동'이 자칫 특정 정당 후보에 대한 지지로 쏠릴 경우 "특정 정당의 2중대" 라는 비아냥도 나올 수 있다.
모임 참여를 제안받았으나 거절했다는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시민단체의 현실정치 참여 자체가 금기시될 건 아니다"면서도 "시민단체의 현실정치 실험은 보수세력의 거센 역풍을 받을 수 있어 성공할 수 있을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시민단체의 정치참여는 정치자금이나 제도 개선 등 정치환경 개혁에 방점을 두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특히 이 모임이 내년 지방선거뿐 아니라 정치색이 짙은 차기 대선까지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져 향후 현실정치 참여 논란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모임 관계자는 "지방선거만 바라보고 이 조직을 만든 건 아니다"면서 "지방선거 성과가 좋든 나쁘든 대선까지 지속적으로 활동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문준모 기자 moonj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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