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간 '정보 빼내기 전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상황인데도 우리 재외공관들 가운데 상당수는 도청방지 장치도 없이 무방비 상태에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따라 재외공관들이 수집, 분석하는 중요 정보 및 국가기밀이 유출되거나 2,500여명에 달하는 공관원들의 신변 안전이 위협 받을 가능성이 우려된다.
한나라당 이범관 의원이 14일 외교통상부에서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전세계 167개 공관 중 전자파 교란 장치나 전자파 차폐 장치 등 도청방지 장치가 설치된 곳은 미국ㆍ일본ㆍ이탈리아 대사관 등 34곳으로 20.4%에 불과했다.
이 가운데 두 가지 장치가 이중으로 설치된 곳은 유엔 대표부, 폴란드 대사관 등 10곳뿐이었다. 첨단기술을 동원한 국가간 정보전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지만 80%에 육박하는 재외공관이 최소한의 대비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외교부 재외공관 시설보안 관리지침엔 '공관 내 제한구역 및 통제구역에 도청과 투시 등 방지 장치와 전자파 차폐 장치를 설치해야 한다'고 돼 있지만 정부는 예산 부족 등을 이유로 보안 강화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특히 테러와 해킹, 도난 등 범죄에 취약한 위험 국가의 공관들일수록 도청에 속수무책이어서 정보전과 테러의 표적이 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조사됐다. 외교부는 이라크, 예멘, 아프가니스탄 등 12개국을 테러위협 A등급(위험) 국가로 분류하고 있으나, 이 중 2개 지역 공관에만 도청방지 장치를 설치했다.
B등급(경계) 국가 57개국 중에서도 도청방지 장치가 전혀 없는 공관이 46곳이나 된다. 이들 국가 중엔 북한 재외공관이 설치돼 있는 국가들이 상당수여서 북한이 우리 공관들의 보안 허점을 노릴 가능성도 제기된다.
재외공관에서 사용 중인 도청 방지 장비 가액은 약 800만원으로, 나머지 133개 공관에 장비를 설치하는 비용은 10억 여원에 불과하다. 하지만 올해 도청, 출입통제, 인터넷 보안 등 재외공관의 각종 보안 대책 마련에 책정된 예산은 4억5,000만원에 불과하다. 결국 정부의 만성적 정보 보안 불감증이 문제라는 것이다.
이 의원은 "재외공관은 국가 이익 및 안전과 직결된 각종 정보의 집합소인 만큼 정보 보안을 철저히 해야 한다"며 "관련 예산을 대폭 확충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문선 기자 moon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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