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 가해자인 남편의 공판에 증인으로 나왔다가 남편이 휘두른 칼에 찔려 중상을 입은 여성이 국가를 상대로 벌인 긴 법정싸움에서 최종 승소했다.
주부 A씨는 2005년 4월 15일 서울동부지법에서 가정폭력 혐의로 기소된 남편 B씨에 대한 공판의 증인으로 출석했다. 증인 출석에 앞서 A씨는 아들에게서 "아버지가 칼을 들고 다니니 조심하라"는 얘기를 듣고, 재판 당일 검사에게 신변 보호를 요청했다. 그러나 검사는 "남편을 피하라"고만 하고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오후 3시. A씨는 법정에서 남편과 마주쳤다. A씨가 증인선서를 작성하던 중 남편은 뒤에서 식칼을 휘둘렀다. 뒷머리가 20cm 찢기고 손가락 근육이 잘리는 중상을 입혔다. 미리 피고인과 증인을 분리했다면 막을 수 있었던 사건이었다.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던 남편은 법정에 흉기를 들여오면서 어떤 제지도 받지 않았다.
재판기록에 따르면 남편은 형과 형수가 보는 앞에서 물고문을 한다며 A씨의 머리채를 잡고 강제로 물통에 밀어 넣는가 하면, A씨를 골방에 가두고 2시간 동안 때려 입원치료를 받게 하는 등 평소 폭행을 일삼았다.
2003년 11월 참다 못한 A씨는 남편을 신고했다. 그러나 검찰은 남편을 정식 기소하지 않고 약식 기소했다. 이에 남편은 혐의를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정식 재판을 청구했다. 남편이 혐의를 부인하자 검사가 A씨를 증인으로 신청해 이날 법정까지 출석하게 된 것이었다.
중상을 입은 A씨는 국가 상대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그러나 국가는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법무부는 "따로 신변 보호 조치를 하지 않더라도 법정에는 경위가 있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할 수 있으며, 부부싸움에서 비롯된 사건에서 증인 보호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1ㆍ2심에서 패소하자 이에 불복해 상소를 거듭했다.
이 사건 상고심을 맡은 대법원 2부(주심 전수안 대법관)는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13일 밝혔다. 남편에게 매를 맞고 칼에 찔리는 동안 국가기관 어느 곳으로부터도 보호받지 못한 피해여성이 4년6개월의 긴 법정싸움 끝에 받아낸 배상금은 5,000만원뿐이었다.
이영창 기자 anti092@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