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셀러 소설의 인기가 뮤지컬로도 이어질까. 14일 개막하는 뮤지컬 '남한산성'(원작 김훈)을 시작으로 '달콤한 나의 도시(원작 정이현), '퀴즈쇼'(원작 김영하) 등 인기 소설이 잇달아 뮤지컬로 무대에 오른다. 소설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 일명 '노블컬'은 익숙한 스토리라는 이점이 있지만, 동시에 원작의 감흥을 살려내야 한다는 부담도 크다. 탄탄한 서사 구조를 전면에 내세운 창작 뮤지컬의 관람 포인트를 살펴본다.
비주얼이 강한 '남한산성'
'남한산성'은 고난을 이겨낸 민중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췄다. 병자호란 당시의 주화파와 주전파, 청나라와 조선의 대립을 배경으로 역사를 심판하기보다는 인간 본연의 심리를 묘사한 원작소설의 의도를 따른 것이다.
남한산성은 전란 중 인조가 청군을 피해 몸을 숨긴 곳. 이를 무대로 옮겨놓은 솜씨가 독특하고 새롭다. 꽁꽁 얼어붙은 산하는 고광택 소재를 이용해 차갑게 표현하고, 대나무와 로프의 직선감은 공격적이고 날카로운 분위기를 살린다. 역사물이지만 그 재해석을 통한 상징적인 무대로 내면의식을 강조한 것이다. 의상과 무대에 자연색감을 준 것도 원색적인 서양 뮤지컬과 차별된다.
연출가 조광화씨는 "쇼적인 볼거리가 뮤지컬 '남한산성'의 주안점"이라며 "정사와 소설에서 비중이 덜한 오달제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매향이란 가상 인물을 등장시켜 극적인 전개를 꾀했다"고 말했다.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 11월 4일까지. 1544-8117
현대판 변사 등장 '달콤한 나의 도시'
내면 묘사가 강한 1인칭 소설을 무대언어로 옮기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가뜩이나 무대는 시공간의 제약을 받는다. '달콤한 나의 도시'는 원작의 문체를 살려줄 현대판 변사, '위치'란 인물을 설정해 해결책을 찾았다. 주인공 은수와 관객만 인지할 수 있는 이 인물이 해설자에 그칠지, 하나의 인물 역을 톡톡히 해낼지는 아직 미지수다.
무대는 그럴듯한 재현보다는 과감한 생략으로 미니멀하게 꾸몄다. 도시적인 느낌을 겨냥한 인디락, 모던락도 뮤지컬 음악으로는 흔치 않은 것이다.
연출가 황재헌씨는 "소설처럼 은수가 두 남자를 두고 갈등하는 심리 묘사에 주력했다"며 "성장보다는 성숙에 관한 이야기라 30대 여성이 특히 공감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 11월 13일~12월 31일. 1544-1555
드라마 살린 '퀴즈쇼'
88만원 세대의 슬픈 자화상을 그린 '퀴즈쇼'는 새로운 인물도, 이야기도 만들지 않았다. 원작이 이미 뮤지컬 주 관람층인 20~30대의 삶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어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하다는 것이다. 무대와 음악은 드라마를 돋보이게 하는 데 주력한다.
사실적인 무대나 아리아가 흘러넘치는 음악은 없다. 대사와 분위기로 그 배경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추상화시킨 무대에 아카펠라, 팝 등 실험적 노래가 가미된다. 장례식날 상복을 입지 않는 등 의상 또한 주제를 역설하는 데 한몫한다.
유쾌하지만 흔한 로맨틱 코미디는 아니다. 2007년 차범석의 희곡 '산불'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 '댄싱쉐도우'를 제작했던 신시컴퍼니가 두번째 시도하는 창작 뮤지컬이다. 서울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 12월 6일~2010년 1월 2일. (02)577-1987
또 하나의 팁. 원작자인 세 명의 소설가는 원작료를 고정 로열티로 받게 된다. "청에 투항하는 장면과 인조가 성을 나서는 장면이 기대된다. 내 작품을 고증학적으로 답습할 필요는 없다."(김훈) "은수의 속내를 '위치'란 남자 인물이 어떻게 풀어갈지 궁금하다. 원작에 얽매이지 말기를."(정이현) 작가들의 말처럼 계약상 각색 범위는 자유로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혜경 기자 thank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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