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7월 강남구청에 안전진단을 신청하며 재건축 사업의 첫 단추를 꿴 서울 대치동 은마아파트. 하지만 구청의 안전진단 반려와 서울시와 중앙정부의 각종 재건축 규제들로 발목이 잡히며 사업추진과 후퇴를 반복하기도 십수차례다.
7년여의 세월이 흐르며 4억원대의 시세는 3배 가까운 10억~12억원으로 불어났고 수많은 투자자들의 손바뀜이 있었다. 저가에 사서 고가에 팔아 시세차익을 본 이도 있고, 뒤늦게 들어가 규제 후폭풍을 맞고 손절매의 쓴 맛을 보고 손을 턴 이도 있을 터.
이제 다시 은마아파트가 재건축 추진의 첫 관문이 될 안전진단 통과를 연내 목전에 두고 있다. 과연 은마가 강남부동산 시장에 또다시 뇌관이 될 지, 정부도 시장도 주목하고 있다.
은마 재건축의 상징성
왜 유독 은마아파트에는 남다른 관심이 쏠리는 것일까. 바로 은마 재건축이 갖고 있는 상징성 때문이다.
우선 다른 재건축단지의 향배에 미칠 파급력. 재건축 추진 단지의 '아이콘'이나 다름없는 은마아파트가 안전진단의 관문을 넘어 사업추진을 본격화할 경우, 그 동안 안전진단 통과에 발목이 잡혀 재건축이 표류 중이던 단지들도 잇따라 사업추진에 시동을 걸고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은마 재건축은 또 '저층 아파트의 재건축 시대'에서 '중층 재건축 시대'로 전환되는 신호탄의 의미도 있다. 그 동안 중층 재건축 단지들은 일반 분양분이 나오지 않는 1대1 재건축(가구수에 변동이 없는 재건축)이 대부분이라, 일반분양을 통한 수익보전이 약해 다른 재건축에 비해 사업추진이 지지부진했던 게 사실.
또 대부분이 강남구에 위치해 안전진단 통과 등 사업 절차에 있어 상대적으로 까다로운 기준이 적용돼왔다. 따라서 은마의 안전진단 통과는 주변 청실아파트 등 대치동 일대 중층 재건축은, 물론 압구정동 현대ㆍ한양아파트 등 강남권의 값비싼 중층 재건축 단지 전반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사업 물꼬 틀까…딜레마는 여전
강남구청이 착수한 안전진단 조사 결과에 따라 은마의 희비는 다시 한번 엇갈릴 전망이다. 그러나 어떤 결론이든 관(官)과 시장으로선 '부담 백배'. 준공 30년이 넘은 노후 단지를 투기와 집값 상승의 우려 때문에 언제까지 틀어막고 있을 수만도 없고, 시장 불안의 불씨가 있음을 알면서도 안전진단을 통과시켜 사업을 본궤도에 올려 놓기도 부담스럽기 때문. 안전진단을 통과시키기도, 안 해주기도 곤란한 처지인 셈이다.
그러나 입주민들은 이번을 계기로 제대로 한번 사업을 이끌어 보자는 게 다수의 공통된 의견. 은마아파트 주민 이애옥(61)씨는 "은마의 경우 강남의 재건축 단지라는 이유로 역차별을 받고 있다"며 "그 동안 여론의 눈치 때문에 주민 안전도 담보할 수 없이 살았는데 이번 안전진단 조사를 계기로 사업이 물꼬를 텄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시장 영향은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 등으로 겨우 잠잠해진 재건축 시장을 다시 들쑤실 것이란 우려와, 이미 주변 재건축 단지들도 오를 만큼 올라 있어 시장 가격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란 전망이 엇갈린다.
대치동 D공인 관계자는 "은마아파트가 갖고 있는 상징성이 크기 때문에 은마가 재건축 물꼬를 트게 되면 강남권 주변 중층 재건축 단지의 시세 변화에도 영향을 주게 될 것"이라며 "호재가 반영되면 거래도 늘어나고, 늘어난 거래는 시세 상승을 뒷받침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부동산1번지 박원갑 연구소장은 "개발 기대감으로 어느 정도 가격이 상승할 것"이라며 "그러나 이미 가격이 절대적으로 많이 치솟은 상태라 수요자들이 부담을 느끼고 있어 급상승 가능성은 낮고 오름폭도 제한적인 수준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박 소장은 "기대심리는 커지겠지만 시세차익 측면에선 고수익이 어렵다는 점을 각인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전태훤 기자 besa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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