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츠버그 G20 정상회의에서 각국 지도자들은 대규모 경기부양을 위한 재정 투입으로 대공황을 겨우 모면한 상황을 스스로 대견스러워하는 분위기였다. 지엽적 의제를 놓고 씨름하는 모습에서 글로벌 금융위기의 근본원인인 금융자본주의의 핵심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는 엿볼 수 없었다.
위기 근본 외면한 G20 회의
관심을 끈 은행 경영진의 보수상한선 설정 문제를 보자. 보너스를 포함한 보수를 단기 업적이 아니라 장기 평균업적에 연동하는 것은 이미 전통적인 금융을 통한 예대 마진보다 각종 금융 중개수수료로 큰 수익을 올리는 은행의 행태를 바꾸는 데는 명백히 한계가 있다. 부자가 돈을 제대로 벌었는지 따지는 것이 아니라, 번 돈으로 호화주택을 구입했다고 난리 치는 꼴이다.
미국경제 전체의 기업이윤(corporate profit) 가운데 금융부분이 차지하는 이윤은 1970~80년대에 비해 2배 가량 증대한 28%에 달한다. 금융ㆍ보험ㆍ부동산의 이른바 FIRE부문이 무려 50%를 차지한다. 이 또한 2배 늘었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주인이 먹는다는 속담처럼 기업과 가계가 벌어들인 수입은 온갖 금융상품의 수수료와 보험 프리미엄 등으로 금융부문이 가져가 버렸다. 경영진 보수뿐 아니라 일반 금융종사자의 소득 또한 급격히 증대하였다.
비대해질 대로 비대해진 금융의 문제를 '과잉 금융화'라고 한다. 오죽하면 오늘날 자본주의를 과거 경영자 자본주의와 대비하여 금융중개인 자본주의라고 부르는 학자도 있겠는가. 이렇게 금융이 과도하게 팽창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왜 그렇게 팽창했는지 묻지 않고 그냥 보수를 많이 가져간다고 불평하는 것은 원인과 결과를 뒤집는 보는 셈이다.
비대해진 금융이 기존의 수익기회가 고갈되면 어떻게든 새로운 수익원을 만들어 내는 것은 당연하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도 금융이 제 먹고 살기 위해 앞장서 조장한 버블에 기인한다. 과잉 금융화 경향도 따지고 보면 경제시스템이 불안정하고 투기를 조장하기 때문이지, 그 1차적 책임을 은행 등 금융기관이 뒤집어 쓸 일은 아니다.
금융자본주의에 대신하여 기업과 가계가 금융에 덜 의존하면서도 안정되게 살며 경제가 착실하게 성장하는 시스템을 모색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보다 근본적인 발상에 기초한 의제는 사라진 듯하다. '술 권하는 사회'가 뭔가 잘못되어 있듯 '빚 권하는 사회'는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이다. 왜 모두가 10년, 20년 뒤의 생활보장을 위해 매일매일 이자율을 확인하고 주가에 조마조마하면서 살아야 하는가?
지난 1년간 각국의 위기 대책에 들어간 비용은 대규모 전쟁 비용과 맞먹는다. 전쟁을 무한히 지속할 수 없듯이 위기 정책은 앞으로 짧으면 1년, 길어도 2년 안에 마무리해야 한다. 출구 전략을 실행에 옮긴 후 경제가 정상궤도에 진입하려면 경기대책과 무관한 공공수요와 민간소비 및 투자가 살아나야 한다. 그러나 전망은 도무지 낙관적이지 않다.
금융 본연의 역할 되찾아야
더블 딥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달러 위기에 따른 세계 통화위기 가능성이 높아지고, 그것이 아니라도 최소한 장기 불황이 우려된다. 우리 경제정책도 여기에 대비해야 한다. 1~2년 성과에 연연할 일이 아니다.
금융자본주의가 득세한 30년 동안 1920년대 수준으로 악화한 소득 양극화와 생활 불안정을 개선하고, 금융이 산업에 자금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본연의 역할로 돌아가는 새로운 경제체제만이 근본적 해결책이다.
조원희 국민대 경제학과 교수 금융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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