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 김수영
어둠 속에서도 불빛 속에서도 변치 않는
사랑을 배웠다 너로 해서
그러나 너의 얼굴은
어둠에서 불빛으로 넘어가는
그 찰나에 꺼졌다 살아났다
너의 얼굴은 그만큼 불안하다
번개처럼
번개처럼
금이 간 너의 얼굴은
● 이 시가 쓰여진 건 1961년. 그리고 우리는 2009년을 살아간다. 그리고 1961년의 시에 나오는 말의 뜻을 아직 우리는 정확하게 모른다. 사랑이라는 말. 사랑을 나는 너에게서 배웠는데 너의 얼굴은 불안하다. 내가 너로부터 배운 사랑을 너는 지키지 않는다.
너에게서 배운 사랑은 너의 변함으로 인해서 나를 배신한다. 나는 사랑이 그런 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너의 얼굴은 '번개처럼' 금이 가있다. 그건 사랑 때문일까? 아니, 너와 나 때문이다.
사랑이라는 말은 변함없는데 너와 나는 사랑의 주인이 아니라 사랑의 그림자가 되어버렸다. 사랑을 놓치고 사랑이라는 말만을 반추하는 지난 시절의 연인이 되어버렸다.
사람에게로만 향한 사랑 뿐일까? 새로운 세상을 향한 열정, 한 길을 위한 정성, 이 모든 것들도 변해가고 우리는 계속 살아가고 사랑은 말만으로 이 세계에 존재한다. 말로만 남은 사랑. 내가 잃어버린 것은 네가 아니라 사랑일 뿐.
허수경·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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