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미혼인 모 IT기업 대표 김모(38)씨는 요즘 샤워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볼 때마다 흐뭇한 웃음이 절로 나온다. 불과 두 달 전까지만 해도 40인치에 육박했던, 물컹하게 잡히던 뱃살 대신 32인치의 매끈한 몸매를 갖게 된 것.
울룩불룩한 근육까지 배 한 가운데 자리를 잡았다. 이른바 왕(王)자 복근, 요즘식으로 말하면 '식스팩(six-pack)' 복근이다. 여섯 개의 팩을 붙여놓은 것 같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바쁜 업무와 잦은 회식으로 운동 시간을 낼 수 없었던 김씨가 감쪽같이 식스팩 복근을 만든 비법은 '성형 수술'이다. 남부럽지 않은 수입을 자랑하지만, 늘 출렁대는 뱃살에 이성 교제에서 자신감을 잃었던 것도 이젠 옛일. 김씨는 "운동시간이 없어 도저히 뱃살을 빼기 힘들어 고심 끝에 수술을 택했다"며 "무엇보다 자신감을 회복하게 돼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운동으로 단련된 남성의 상징이라는 복근까지 성형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탄력 넘치는 허벅지를 찾는 남성들만큼이나, 탄탄한 근육질 몸매에 매료되는 여성들의 선호와 맞물려 벌어지는 현상이다. '몸매 지상주의'가 남녀 구별 없이 확산되는 추세다.
2001년 콜롬비아의 한 의사에 의해 개발된 '식스팩 수술'은 지난해 여름 국내에 상륙한 후 서울 강남에서만 10여 곳의 성형외과에서 시술하고 있다.
식스팩 수술은 기존 지방흡입술을 발전시켜 지방층을 섬세하게 제거한 뒤 근육의 윤곽을 뚜렷하게 만들어주는 시술로 비용은 대략 600만~1,000만원. 식스팩 수술의 원조로 불리는 강남 N성형외과 관계자는 "지난 1년 동안 50여명이 이 수술로 탄탄한 복근을 회복했다"며 "수술 받으러 오는 사람은 대부분 뱃살 걱정은 느는 데 운동할 시간은 없는 30대 후반의 남성들이다"고 말했다.
남성들 사이에서 떠오르는 또 다른 성형 수술은 '키 크기 수술'. 종아리 뼈를 자른 뒤 인위적으로 3~10cm 가량 뼈를 늘리는 수술로 치료기간이 몇 개월씩 걸리고 비용도 수천만원에 달하지만 키 작은 설움을 떨쳐버리려는 남성들의 발길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키 크기 수술 전문병원인 강남 R병원 앞에서 만난 송모(32)씨는 "젊은 여성들이 점점 더 키를 따지고 있어, 작은 키가 한스럽다"며 "키 높이 신발도 한계가 있어 수술을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송씨의 키는 168㎝다.
박피수술, 지방흡입 및 지방이식, 안면윤곽수술, 심지어 전신성형까지 받는 남성도 적지 않다. 업계 관계자는 "10년 전만 해도 성형수술 시장에서 남성 고객 비중이 10% 미만이었지만, 요즘은 30%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전방위적 남성 성형은 '탄력 있는 몸매'에 대한 선호가 남녀 구별 없이 강렬해지고 있는데다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과도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남재일 경북대 교수는 "남성 성형이 느는 것은 남성들이 보는 주체에서 보여지는 대상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으로 여성의 사회적 영향력이 그만큼 커졌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결혼정보업체 관계자는 "여성들이 배우자를 고를 때 남성의 경제적 조건을 우선 따지지만, 경제력이 있는 전문직 여성일수록 남성의 외모와 스타일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말했다.
결혼정보회사 가연이 올해 초 남녀회원 4,13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이상형 결정에 가장 중요한 요소로 남성의 38%가 '몸매'를, 여성의 46%가 '얼굴'을 꼽아 남녀 모두 외모를 가장 중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치관'이나 '주변환경'을 꼽은 여성은 각각 10%와 5%에 그쳤다.
젊은 세대의 몸매 가꾸기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럽지만, 성형까지 하게 만드는 사회적 분위기에 대한 우려도 많다. 남 교수는 "몸에 대한 관심이 성형수술이란 즉물적 형태로 나타나는 것은 우리사회의 문화적 깊이가 빈약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고 지적했다.
김창훈기자 chkim@hk.co.kr
이동현기자 na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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