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누군가가
그리우면 나지막한 산에
오르자. 우리들 마음
곱게 비워 산에 오르면
금세 한아름 가슴에
안겨 올 풀빛 그리움을
만나러 가자
- '누군가 그리우면'
희귀난치병으로 몸조차 가누지 못하는 17세 소년이 움직이기 힘든 손가락으로 컴퓨터 키보드를 한자씩 눌러가며 시를 썼다. 이 시들이 류시화 시인의 도움으로 시집으로 만들어져 세상에 나왔다.
서울 연남동에 있는 근육병 환자 재활시설 '잔디네 집'에 살고 있는 이동남(17ㆍ사진)군이 이달초 첫 시집 <해마다 크는 집> (문학의 숲)을 냈다. 해마다>
이군은 근육 유지에 필요한 디스트로핀이라는 단백질이 부족해 생기는 희귀난치병 근이영양증을 다섯살 때부터 앓아왔다. 이 때문에 그는 하루 대부분을 누워서 지내야 했고, 자연스럽게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많았다.
13세이던 2005년 우연히 시를 쓰기 시작했다. 시를 쓰는 법을 제대로 배운 적은 없지만 누운 채 하늘을 바라보며 떠올린 희망, 그리움, 상상이 시속에 녹아 들었다. 부모의 얼굴도 모른 채 대전의 보육원에서 자라다 2007년 '잔디네 집'에 오면서 시를 본격적으로 썼다.
"어느 날 누군가가 그리우면 나지막한 산에 오르자. 우리들 마음 곱게 비워 산에 오르면 금세 한아름 가슴에 안겨 올 풀빛 그리움을 만나러 가자"('누군가 그리우면')
손가락에 힘이 있을 때는 컴퓨터 키보드를 눌러가며 시를 썼지만, 최근 병이 악화돼 그마저도 힘들어지자 이군은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시를 받아쓰게 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115편의 시가 만들어졌다.
'잔디네 집'에서 봉사활동을 한 적이 있던 류시화 시인이 올해초 우연히 이군의 사정을 알게 됐고, 출판사 문학의 숲을 연결해주면서 시집이 나왔다.
류 시인은 시집의 추천사를 통해 "나는 너보다 더 많이 육체에 갇혀있다. 너는 '남을 위해 흘리는 눈물은 별'이라고 쓰지만, 나는 아직 나를 위해 운다. 부서져 가는 육체 안에 있지만 바라볼 수록 눈부신…"이라며 이군을 격려했다.
이군은 8일 재학중인 서울 중동의 지체장애교육기관 한국우진학교에서 작품 낭송회를 갖기도 했다. 이군은 "세상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으면 좋겠다"며 "감동을 주는 시인이 되고 싶다"고 희망을 밝혔다.
이민주 기자 연합뉴스 m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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