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국회와 정부 간에 흥미로운 기싸움이 벌어졌다. 정확하게는 국회 예산정책처(예산처)와 기획재정부가 벌인 논쟁이며 피차 기세와 체면을 건 싸움이었다. 발단은 예산처가'2009년 국가재정운용 점검보고서'에서 "정부가 올 상반기예산 조기집행 실적이 계획을 초과 달성했다고 주장하지만 실집행률을 따지면 계획에 크게 못 미친다"고 꼬집은 것이다.
국회예산처-기재부 체면 건 논쟁
신속하고 충분한 재정지출로 위기 탈출의 글로벌 모범사례를 만들었다고 자랑해온 정부로선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곧바로 '상반기 재정 조기집행, 민간 실집행률 94.3%'라는 반박자료를 내고 "국회 예산처가 40개 부처, 6,107개 사업 중 집행률이 부진한 446개, 특히 실집행률이 70% 이하인 사업만 분석대상으로 삼아 수치의 객관성과 대표성이 떨어진다"고 주장했다. "지자체에 지원된 자금 중 일부 사업이 설계 변경 등으로 지연될 수 있어 국고지원 시점과 실집행 시점 간에 시차가 생길 수 있다"는 해명도 곁들였다.
예산처가 재반격에 나섰다. 우선 올 7월 관련법에 따라 기획재정부에 상반기 실집행 실적 자료를 요청했으나 이를 거부했고, 보고서를 공식 발표하기 전에 신뢰성 확보 차원에서 전 부처에 의견을 제출해달라고 요청했으나 여타 부처와 달리 기획재정부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고 공박했다. 뒤늦게 웬 소동이냐는 것이다. 더구나 올들어 14차례나 개최한 '예산집행 특별점검단 회의'결과를 매번 공개하면서도 실집행률은 밝히지 않던 정부가 궁지에 몰리자 94.3%라는 실집행률 수치를 처음 들고 나왔다는 것이다.
전체 그림은 이렇다. 정부는 올해 총사업비 257.7조원의 60.6%인 156.1조원을 상반기에 조기 지출할 계획이었는데, 실적은 167.1조원(64.8%)으로 집계돼 계획 대비 집행률은 107%에 이르렀다. 다만 일부 사업이 부진해 최종적으로 민간부문에 지출된 액수는 157.5조원으로 실집행률이 94.3%이지만 절대액으로는 이미 계획을 넘어섰다.
이 설명에 동의한다면 부진한 사업 400여 개만 선별해 실집행률을 50% 남짓으로 추산하며 집행관리가 미흡하다고 지적한 국회예산처는 너무 나간 것이 된다. 전체 사업보다 실집행률이 70% 아래인 문제사업을 점검하는 게 당초 취지였다고 해도 말이다. 하지만 여기서 예산처는 중요한 문제를 제기한다. 이른바 정보의 공유문제다.
그 중심에는 기획재정부가 재정운용의 투명성을 제고하겠다며 2004년부터 1,200억원이 넘는 돈을 들여 구축해온 '디지털예산회계시스템'이 있다. 예산을 딸 때는 시스템을 통해 생성된 재정정보를 국회 등에 실시간으로 제공한다는 등 온갖 미사여구를 들이대더니 지금껏 이를 통해 국회에 내놓은 정보나 자료는 전혀 없다는 것이다.
국회예산처가 가장 흥분하는 것은 바로 이 대목이다. 정부가 국민세금으로 만든 시스템을 독차지하고 정보 공유는커녕 국회가 요청하는 자료도 내놓지 않으면서 뒤늦게 뭐가 맞니, 틀리니 하며 호들갑을 떤다는 것이다.
서로 다른 관점과 입장에서 시작된 논란이지만 이 기회에 따져볼 점은 적지 않다. 첫째는 의회가 예산을 편성하는 '예산 법률주의'의 미국과 달리, 정부가 짠 예산을 의회가 심의ㆍ의결하는'예산 의결주의'를 채택한 우리 제도의 한계와 허점을 보강하는 일이다. 정부의 재정운용을 견제ㆍ감시하는 국회의 권한과 전문성을 강화하는 작업이 그것이다. 정부가 위기 처방으로 쏟아 부은 천문학적 재정지출과 통화공급은 곧 국민에게 세금이나 인플레로 돌아온다는 점에서 국회의 책임과 역할은 더 커진다.
재정규율 주도권 국회가 쥐어야
둘째는 정부가 야금야금 갉아먹는 재정 건전성과 고무줄 같은 재정규율 잣대에 대해 국회가 통제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할 필요성이다. 4대강 사업비의 일부를 수자원공사에 돌리고 재정사업 실적을 뻥튀기하는 것에서 보듯, 정부의 기본 속성은 임기응변과 편의주의다. 예산처를 비롯한 국회기구와 의원들이 눈을 부릅뜨고 파헤치지 않으면 우리는 늘 좋은 게 좋다는 식의 적당주의에 매몰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논쟁은 거셀수록 좋다.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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