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평화상 수상자 선정에는 으레 뒷말이 따른다. 수상자의 업적 평가에 객관성을 기하기 용이한 여타 노벨상과는 달리 노벨 평화상은 대개 가치 영역에 속하는 업적을 수상 기준으로 삼는 탓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올해 노벨 평화상 수상은 거기에 더해 미래의 업적을 '가불한' 측면이 강해 더욱 논란을 부채질하고 있다. 오바마 자신과 참모들이 누구보다도 더 당혹스러워 했다니 찬반 논란은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그렇다 해도 오바마의 노벨 평화상 수상을 놓고 미국 사회가 둘로 갈라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논란이 확대되는 것은 지나치다 싶다.
■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수상자 선정 이유로 오바마 대통령의 "인류 협력과 국제 외교를 강화하기 위한 특별 노력"과 "핵무기 없는 세상을 위한 비전과 노력"을 들었다. 유엔과 국제기구의 역할을 강조하는 다자 외교의 중심을 되찾았고, 무력이 아니라 대화와 협상을 국제분쟁 해결의 수단으로 선호한 오바마 외교 스타일을 평가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오바마의 노벨 평화상 수상자 결정은 일방주의와 무력 행사를 앞세웠던 전임 부시 행정부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다. 부시가 오바마의 노벨평화상 수상에 일등 공신이 됐다고도 할 수 있겠다.
■ 부시의 일방주의 외교를 부추겼던 미국 내 보수 세력이 노벨위원회를 노골적으로 비난하는 것은 꼴 사납다. 네오콘 논리 확산의 선봉에 섰던 보수성향 주간지 '위클리 스탠더드'의 발행인은 "노벨위원회는 반 미국 위원회"라고 비난했고, 보수적 칼럼니스트 조지 윌은 "노벨위원회의 결정은 위원회가 쌓아온 진지함에 대한 먹칠"이라고 쏘아붙였다. 오바마에게 노벨 평화상 수상을 거부하라거나 수상식에 참석하지 말라고 요구하는 목소리도 대개 보수진영에서 나온다.
■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이번 노벨평화상 선정은 당혹스럽고 때가 아니라는 느낌을 준다. 미국 CBS 방송 밥 쉬퍼 앵커의 지적대로 '때 이른 찬양'이 역풍을 불러 정작 오바마 대통령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노벨위원회가 밝혔듯이 오바마 대통령은 재임 9개월의 짧은 기간에 '보다 나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전 세계에 보여줬다. 특히 '핵무기 없는 세상'이라는 캐치프레이즈는 북한 핵을 머리에 이고 살 수 없는 우리의 이해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그 희망을 현실로 바꾸어 노벨평화상 수여가 '때 이른 찬양'이 아니었음을 증명해 줬으면 좋겠다.
이계성 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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