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외에서 정자와 난자를 인공 수정시켜 만든 배아(胚芽)를 인간으로 볼 수 있을까. 또 배아가 법적인 주체로서 헌법소원을 청구할 자격이 있을까.
8일 헌법재판소는 배아를 '인간'이 아닌 '세포군'으로 보아 배아의 연구 목적 사용 및 폐기 등을 규정하고 있는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생명윤리법)의 위헌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공개변론을 열었다.
■ 배아는 인간인가, 헌법소원 자격 있나
2005년 인공수정을 시도하던 A씨 부부는 "배아의 연구와 폐기를 허용한 것은 배아의 생명권을 침해한 것"이라며 헌법소원을 냈다. 헌법소원 청구인에는 A씨 부부 외에 이들의 정자와 난자가 체외수정을 통해 결합한 두 개의 냉동배아가 '배아1', '배아2'라는 이름으로 참여했다.
이에 따라 이날 공개변론에서는 재판부가 생명윤리법의 위헌성을 판단하기에 앞서 배아에게 헌법소원을 청구할 자격이 있는지가 우선 쟁점이 됐다.
청구인 측은 배아에게도 출생한 인간과 같은 헌법적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청구인 측 대리인은 "배아, 태아, 출생 후 인간은 생명의 연속선상에 있는 동일한 생명체로서 고유한 유전자를 지니고 있다"며 "배아는 존재와 인격의 근원으로서 그 존엄과 가치를 법적으로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해관계 기관으로 참석한 보건복지가족부 측은 착상도 안 된 냉동배아를 온전한 인간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일축했다. 복지부 측 대리인은 "임신 목적으로 사용될지도 불분명한 배아가 태아 혹은 출생한 인간과 동일한 지위를 가진다고 볼 수 없다"며 "배아에게는 헌법소원 자격이 없다"고 주장했다.
■ 배아를 연구 목적으로 쓸 수 있나
임신에 사용되지 않은 잔여배아를 연구 목적으로 사용하거나 보존기간(5년)이 지나면 폐기할 수 있게 한 생명윤리법의 위헌 여부에 대해서도 양측은 현격한 견해차를 보였다.
청구인 측은 "정자와 난자가 수정된 순간부터 인간 생명이 시작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며 "그런데도 배아를 연구 목적에 사용하거나 임의로 폐기하는 것은 배아의 생명권, 신체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냉동배아를 임의로 폐기해서는 안 되고 자연 폐사할 때까지 국가가 관리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반면 복지부 측은 "인공수정 시술 특성상 잔여배아가 발생할 수밖에 없고, 의료ㆍ연구기관에 생명윤리위원회를 두어 연구의 윤리성을 보장할 수 있는 통제를 제도화하고 있어 문제가 없다"고 강조했다. 교육과학기술부 측도 "배아 연구는 희귀ㆍ난치병 치료, 불임치료 연구 등에만 예외적으로 허용되고 있어 그 정당성이 인정된다"고 주장했다.
헌재는 공개변론을 통해 제기된 양측의 주장을 토대로 생명윤리법 조항의 위헌성 여부를 본격 심리할 예정이다. 공개변론 후 수개월 이내에 결정이 선고되는 관례로 볼 때 이르면 연내에 위헌 여부가 선고될 수 있다.
헌재가 어떤 결정을 하느냐에 따라 냉동배아를 이용한 생명공학 연구뿐 아니라 불임치료 및 인공수정 등 의학적 시술에까지 큰 영향을 줄 수 있어 이번 헌법소원에 의료계와 학계의 큰 관심이 쏠려 있다.
이영창 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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