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의 감독정책과 업무방식에 대해 은행 등 금융회사들의 인식이 부정적 인 것으로 밝혀졌다고 한다. 민주당 신학용 의원이 여론조사기관에 의뢰, 국내외 417개 금융회사의 대관(對官) 업무 담당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다. 그 내용은 크게 실망스럽다. 과거처럼 금융위가 상전 노릇을 하며 일관성 없는 정책을 펴거나 구두지시를 남발하는 등 관치의 유령이 되살아난 듯한 행태를 드러내서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며 금융규제의 필요성이 새삼 부각됐다고 하나, 이런 흐름에 편승해 시대착오적 유혹에 빠져선 안 된다.
우선 금융위 정책에 대해 '금융현실을 알기는 하는데 방향 제시를 못하거나 정책이 오락가락하고 정책리더십도 부족하다'는 등의 부정적 답변이 75%를 넘은 것은 다분히 충격적이다. 금융회사들의 이기적 잣대를 감안한다 해도 이런 성적이 나온 것은 그동안 금융위가 강조해온 업무 혁신과 서비스 강화가 일선에서는 거의 공염불에 불과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금융위 출범 이후 업무현장의 변화 체감도는 오히려 뒷걸음질쳤다. '자료 제출 등 각종 요구 때 공문서 없이 전화나 구두로 하는 경우가 늘었다'고 꼬집는 지적이 많고, '규제가 심해졌다'는 답변이 '완화됐다'는 응답보다 많은 것은 대표적 사례다. 공식 행정절차보다 구두지시 방식의 업무를 선호하는 것은 문제가 될 경우 책임을 피해가겠다는 행정편의주의적이고 권위주의적인 발상이다. 서민금융 지원대책 역시 실효성도, 성과도 없다는 낙제점을 받았다.
금융위로선 억울한 대목이 없지 않을 것이다. 경제위기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금융회사들이 자신들의 잘못은 생각하지 않고, 건설ㆍ해운 구조조정, 중소기업 대출만기 일괄 연장, 미소금융재단 출연 등 불가피했던 정부의 위기처방을 매도했을 법도 하다. 하지만 문서 없는 비밀행정이 되레 늘고 정책 리더십이 부족하다는 지적은 잘 새겨들어야 한다. 최근 정부가 서민지원 등 각종 명목으로 민간기업에 손을 벌리는 일이 잦고 청와대 행정관까지 그 버릇에 물든 것을 보면, 이번 결과는 결코 일부 불만층의 푸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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