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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년전 시해 당한 그날에… 뮤지컬 '명성황후' 일 첫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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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년전 시해 당한 그날에… 뮤지컬 '명성황후' 일 첫 공연

입력
2009.10.12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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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리 아침은 더디 밝는가/ 이 가슴은 왜 이렇게 서늘한가/ 어리고 약한 세자 어질고 후덕하신 전하/ 호롱불 아래 오순도순 얘기 나누며/ 한세상 정답게 살 수도 있었으련만/ 기구하고 힘겨워라 이 땅의 왕비여."

을미사변 114주기인 8일 오후 7시, 명성황후의 목소리가 그를 시해한 낭인들의 고향인 일본 규슈 구마모토현에서 울려퍼졌다. 시해 전날 밤 죽음을 예감한 명성황후의 마음을 담은 노래 '어둔 밤을 비춰다오'가 흐르자 가쿠엔대학 내 극장을 메운 600여명의 관객들은 숨을 죽였다.

뮤지컬 '명성황후'가 초연 이후 14년 만에 처음으로 이날 일본에서 선보였다. 공연이 열린 구마모토현은 명성황후 시해 가담자 48명 중 21명의 고향이다. 이날 공연은 원작을 1시간 분량으로 편집한 영상을 상영하면서, 명성황후 역의 이태원씨를 비롯해 박완(고종), 지혜근(홍계훈 장군)씨 등 출연 배우들이 주요 곡 5곡을 부르는 특별공연 형식이었다.

전막 공연은 아니었지만 반응은 뜨거웠다. 구마모토를 소재로 한 '명성황후를 생각하는 모임' 등 일본의 여러 시민단체 회원들과 재일동포들이 몰려들어 공연장은 객석 통로까지 가득 찼고, 아예 서서 관람하는 이들도 있었다. 명성황후가 시해되는 장면에서는 낮게 흐느끼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렸다.

명성황후 시해 100주년이던 1995년 초연된 '명성황후'는 꾸준히 일본 공연을 추진해왔지만, 일본 내 보수세력의 간접적인 방해로 중도 취소되는 등 난항을 겪었다. 이번 공연은 2년 전 기획사 에이콤 측이 현장기행 차 구마모토에 들렀다가 '명성황후를 생각하는 모임'과 만남을 가진 것을 계기로 성사됐다.

연출자 윤호진 에이콤 대표는 "한ㆍ일간의 역사를 재조명하고, 함께 이해하며 화해하는 자리를 만들고자 했다"며 "전막 공연이 올려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공연을 본 오가타 시호(21ㆍ가쿠엔대 3년)씨는 "가슴이 찡했다"며 "일본이 명성황후를 시해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대다수 일본인들에게 역사를 알리는 역할을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공연장에는 시해 가담자였던 구니토모 시게야키의 외손자 가와노 다쓰미(87)씨도 찾아왔다. 가와노씨는 배우들을 만나 선물을 전달하고 "더 이상 두 나라 사이에 선을 긋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구마모토(규슈)=김혜경 기자 thank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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