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대로라면 이 원고를 쓰고 있을 8일 오후 기자는 일본 총리관저에서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일본 총리와 얼굴을 마주하고 기자회견을 하고 있어야 했다. 일본 외무성은 당초 9일 방한을 앞둔 하토야마 총리의 기자회견을 한국 특파원들에게 먼저 제안했었다.
총리의 첫 방한을 앞두고 한국민들에게 민주당 새 정권의 아시아 친화 정책을 소개하려 했을 것이다. 한국 특파원들은 전후 처음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를 실현한 주역인 하토야마 총리를 만나 한일 관계의 비전을 들어보기를 당연히 기대했다.
하지만 기자회견은 외무성이 7일 "총리가 시간을 내기 힘들다"며 일방 취소하는 바람에 무산되고 말았다. 이날 일본을 휩쓸고 지나간 태풍 때문에 평소보다 총리가 더 바빴을 거라는 건 짐작이 간다. 하지만 하토야마 총리가 대한 정책을 한국 언론을 통해 한국민들에게 직접 밝힐 수 있는 기회로 30분을 할애하기 힘들 정도였는지는 의문이다.
더 아쉬운 것은 이 과정에서 보여준 외무성의 태도다. 외무성은 처음 15명 한국 특파원 전체를 대상으로 기자회견을 제의했다가 갑자기 "회견장이 좁다"며 숫자를 절반으로 줄여주도록 요구했다. 미리 제출한 질문도 "너무 딱딱하다"며 자신들이 손을 봐서 다시 보내왔다.
총선 전 당시 하토야마 민주당 대표의 기자회견은 달랐다. 선거공약 발표는 내외신 언론을 제한 없이 초청, 민주당 기자회견으로는 이례적으로 호텔 연회장을 빌려 진행했다. 선거 직전 외국특파원 회견을 자청한 하토야마 대표가 '시나리오' 없이 특파원들의 서툰 일본어 질문을 경청하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도대체 뭐가 바뀐 걸까. 권좌에 올랐다고 금세 하토야마 총리가 변했을 것 같진 않다. 기자회견을 준비하는 '스탭'이 찬밥 먹으며 정권교체 의지에 불탔던 야당 당직자에서 자민당 전 정권에 익숙한 공무원으로 바뀐 차이가 아닐까.
김범수 도쿄특파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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