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연 때문에 옛날처럼 파랗지만은 않은 서울의 하늘 아래에도 가을은 오고, 도시 한복판에 아무렇게나 서 있는 대추나무에는 대추가 열렸다. 대도시의 삶은 삭막하다고 투덜대다가도 아파트 단지의 감나무에 열린 감, 바닥에 잔뜩 떨어진 은행, 주택가 골목에 대추를 한 보따리 열고 서 있는 대추나무가 우연히 눈에 띄면 그냥 반갑다.
'아, 숨 막히는 서울에서도 모두가 숨을 쉬고, 한 뼘 땅에 발붙이고 지탱하며 사는구나. 인간들도, 나무들도 가을을 맞는구나' 하는 감상에 빠진다.
가을의 특징은 빨리 지나간다는 것이 아닐까. 해가 쨍쨍 내리쬐는 지리한 여름 후에 슬며시 찾아오는 계절은 추석이라는 큰 명절을 보내고 나면 빠른 속도로 겨울까지 내달려 버린다. 특히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는 추분을 지나면서 그 가을은 겨울을 향해 더욱 속력을 올린다. 이맘때면 생각나는 것이 각종 버섯 요리와 국화 향기다.
능이 표고 송이처럼 맛으로 손꼽히는 버섯들은 무얼 해 먹어도 맛이 좋다. 밥에 넣으면 약밥이 되고, 국에 넣으면 입 안이 향기롭다. 섬유질이 많은 목이버섯은 꽈리 고추 등과 볶아서 반찬으로, 양송이는 깨끗이 씻은 다음 날것을 얇게 썰어 샐러드에 그대로 섞어 넣는다.
표고는 맛이 진해서 국물을 내면 좋다. 뜨끈한 표고버섯 국에 밥을 말고 고운 고춧가루 솔솔 뿌려 한 그릇 먹고 나면 헛헛했던 속이 부드럽게 차오른다.
여기에 곁들이면 좋을 것이 바로 국화 술. 예로부터 불로장생주라 불렸던 국화주는 국화꽃이 주인공이다. <동의보감> 같은 옛 의학 문헌에서도 탁월한 고혈압 방지제로 국화를 꼽는다. 달착지근한 향기를 뿜는 식용 국화를 취해서 담근다. 동의보감>
가을 하면 전어가 대세지만 내 입맛은 도루묵을 찾는다. 동해안에 가을이 왔음을 알리는 도루묵은 알이 통통하게 차 있다. 냄비에 무를 넉넉히 깔고, 간장 고추장 고춧가루로 맛을 낸 양념으로 자작하게 끓여 낸다. 밥 두 그릇은 기본으로 비우게 만드는 맛 좋은 영양식이다.
이 밖에도 대하를 비롯한 해산물 호박밥 밤밥 등은 아쉽게 지나가버리는 가을의 기억을 내 속 깊이 남겨 준다. 가을 별미를 나눠 먹고 힘내서 겨울을 준비하자. 이제 올해가 80일 남짓 남았으니 열심히 버텨 왔던 한 해의 막판 스퍼트를 내야 할 때다.
박재은 푸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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