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을 이용하면서 오늘에야 우측통행을 경험했다. 좌측통행이던 예전에도 좌우 신경쓰지 않고 걸어다녔는데 말이다. 우선 상, 하행 에스컬레이터의 방향이 바뀌었다. 에스컬레이터 앞에 붙어 있던 발자국 모양의 스티커 대신 '우측통행'이라는 스티커가 붙었다. 그것을 볼 때마다 몸가짐을 바로(右)했다. 좌측통행이 일제의 잔재란 이야기에 발끈해서 일부러 우측통행을 하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에스컬레이터는 어쩔 수 없었지만 계단이나 길거리에서 우측통행을 하는 이는 나뿐이었다. 사람들은 자신들 나름의 방식과 습관대로 걷고 있었다. 중구난방처럼 보이지만 우리는 걸으면서 생면부지의 사람들과 교감을 주고받는다. 그 사인이 어긋나서 이마를 부딪히는 이들은 본 적 없다. 평생에 두어 번, 마주오던 사람과 외나무 다리에서 만나듯 딱 마주칠 때가 있기는 하다.
난처하고 쑥스럽지만 그럴 때 짓는 표정이 우리에겐 따로 있다. 우측통행을 한답시고 주춤대는 바람에 괜히 사람들의 진로만 방해하고 말았다. 문득 걷는 일 자체가 피곤해졌다. 왼쪽과 오른쪽. 그동안 왼쪽은 왼손에 비해 능수능란하다는 오른손 때문에 수모를 겪었다. 불어의 왼쪽을 뜻하는 단어는 서툴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우측통행을 실시하게 된 걸까. 그나마 우리 머릿속에 있던 좌측통행의 '좌'마저도 사라지게 생겼다.
소설가 하성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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