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꼭 5년 후인 2014년10월8일. 대기업 임원 K씨는 일어나자 거실에서 리모콘으로TV 전원을 켠다. TV화면엔 파란색 삼성 로고가 잠시 보인 뒤, 곧바로 메뉴 화면으로 이어진다. 마우스로 클릭하듯 리모콘을 통해 매체→신문→종합지→한국일보 순으로 찾아가자, 그날 아침 조간신문이 TV화면상에 펼쳐진다. 신문을 훑어본 K씨는 '방송'메뉴로 돌아가 아침 뉴스를 시청한다.
TV엔 신문과 방송만 있는 것은 아니다. 최신 영화, 음악, 게임, 홈쇼핑 등의 다양한 콘텐츠가 즐비하다. 물론 TV를 인터넷과 연결, 컴퓨터로 쓸 수도 있다. TV는 이제 신문도 되고, 컴퓨터도 되고, 홈시어터도 된다. 한때는 '바보 상자' 소리도 듣고, 학부모들이 자녀들로부터 떼어놓아야 할 '공적'처럼 여겨지기도 했지만, 이젠 TV없이는 살 수 없는 세상이 됐다. TV는 초고용량 반도체가 10개 이상 탑재되는 최첨단 제품인 것이다.
이것은 TV의 미래 모습이다. 이미 삼성전자 뿐 아니라 LG전자등 다른 전자업체들도 인터넷TV, 브로드밴드TV, 네트워크TV란 이름으로 연구가 한참 진행 중이다. 이르면 몇 년 안에 '똑똑해진 TV'는 현실화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
방한중인 루퍼트 머독 뉴스코퍼레이션 회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가 7일 경기 수원시 삼성전자 디지털미디어센터에서 회동을 가졌다. 세계 최대 미디어ㆍ콘텐츠그룹을 이끄는 '미디어의 황제'와 세계 최대 전자업체의 '후계자'가 만난 것 자체도 중요하지만, 이들이 과연 무슨 얘기를 나눴을지는 더욱 관심거리다.
두 사람의 접점은 TV로 모아진다. 삼성전자가 그릇(TV)을 생산하는 곳이라면, 뉴스코퍼레이션은 그릇에 담길 내용물(콘텐츠)를 만드는 기업이다. 자연스럽게 TV의 미래, 상호사업연계방안에 대해 논의했을 공산이 크다. 업계에선 삼성전자의 차세대 TV를 통해 주문형비디오(VOD) 형태로 머독 회장이 보유한 뉴스 및 영화 콘텐츠를 판매하는 방안 등이 논의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사실 삼성은 오래전부터 TV에 각별한 공을 들여왔다. 지난 2006년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은 "집안의 가장 중요한 자리를 가장 오랫동안 차지하고 있는 것이 바로 TV"라며 세계 최고의 TV를 만들 것을 주문했고,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직접 단장을 맡아 시스템 반도체 사업부를 주축으로 그룹 차원의 드림팀이 구성됐다. 그냥 개량된 TV가 아닌, 반도체와 최첨단기술이 집적된 전혀 다른 컨셉의 '똑똑한 TV'를 만들기로 한 것이다.
이런 노력 끝에 지난해 삼성전자만의 TV 화질 개선 반도체 칩이 개발됐다.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진입 장벽을 구축한 것. 이어 금년엔 세계 최초 발광다이오드(LED) TV를 통해 지금까지 없던 새로운 시장을 창출, 반년만에 100만대 판매 돌파라는 기록도 세웠다. 앞으로 TV는 초고용량 반도체를 탑재한 최첨단 제품이 될 것이 분명해 반도체 세계 최강자인 삼성전자로선 유리할 수 밖에 없다.
머독이 이끄는 뉴스코퍼레이션은 ▦폭스TV와 스타TV 등 글로벌 방송 ▦월스트리트저널과 뉴욕포스트 등을 비롯한 신문 ▦20세기폭스 영화사 등을 거느린 세계 최대 미디어 재벌이다. 업계 관계자는 "TV 1위인 삼성전자와 미디어 1위인 뉴스코퍼레이션이 힘을 합칠 경우 전 세계 TV 및 미디어 시장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될 것은 명약관화하다"고 말했다. 양측은 앞으로 실무적 레벨에서 보다 구체적인 협력방안을 마련할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두 사람의 만남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머독 회장은 2007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가전전시회(CES)에서 삼성전자 부스를 직접 방문, 이 전무로부터 삼성전자 제품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이 전무도 미디어ㆍ콘텐츠쪽에 대한 관심이 매우 큰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국내외 관련업계 인사들과 접촉하며, 보폭을 넓히는 중이다. 이 전무는 6월 최태원 SK 회장을 만난 데 이어 7월 국내에서 이해진 NHN 이사회 의장 및 김택진 엔씨소프트 사장과 만났고, 미국 아이다호에서 열린 전자ㆍ금융ㆍ미디어 관련 최고경영자 모임인 '선밸리 컨퍼런스'에도 참석했다.
지난달엔 가전 및 미디어 전시회인 독일 IFA 2009 현장도 직접 방문했다. 특히 IFA 전시장에서는 인터넷 TV를 인터넷 동영상을 검색해 보는 등 장시간 직접 시연해보면서 주변의 시선을 끌었다.
멀티미디어 시대에 TV와 콘텐츠는 결국 하나로 수렴할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 삼성 후계자로서 이 전무 역시 '미래TV'쪽 행보를 더욱 넓혀갈 것이란 관측이다.
한편 머독 회장은 이날 남용 LG전자 부회장을 서울 서초동 R&D 센터도 방문, 환담을 나눴다.
박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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