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구가 아니라, 독려였다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설명대로라고 해도 청와대 행정관이 민간 기업에 거액의 기금 출연을 '독려'한 것은 어떤 이유에서건 부적절해 보인다. 전병헌 민주당 의원의 국정감사자료에 따르면 8월 초 방송정보통신비서관실의 행정관이 통신 3사(KT SKT LG) 임원들을 청와대로 불러 한국디지털미디어산업협회(KoDiMA) 기금 250억원을 빨리 내달라고 말한 것으로 밝혀졌다.
당사자와 청와대는 기금 모금이 협회의 안정적 운영을 위해 회원사들이 지난해 자발적으로 결의한 것이며, 방송통신 선진화와 IPTV사업의 건전 육성을 위해 협회를 만들어 기금을 육성하는 것은 일종의 관행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방통위 근무 때부터 담당했던 일이어서 마무리를 지어야겠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동기와 과정이야 어떻든 현직 청와대 행정관이 나섰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오해를 살 만하다. 말이 독려이지, 청와대로까지 불러간 기업 입장에서 그것을 강요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음은 과거 정권의 숱한 비슷한 사례가 증명하고 있다.
게다가 디지털미디어산업협회는 IPTV 사업의 육성과 방송ㆍ통신 융합에 따른 차세대 미디어 산업 활성화를 위해 관련 업체들이 설립한 민간단체다. 그런 곳의 기금 모금에 방통위나 청와대가 직접이든 간접이든 개입한 것은 분명 잘못이다. 협회와 회원사들의 자율적 합의와 참여에 맡겨 놓으면 된다.
모금이 지지부진해 독려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면 협회가 하면 된다. 만에 하나라도 협회보다는 청와대의 말발이 먹혀 드니까, 아니면 협회 회장이 대통령의 언론특보 출신이어서 앞장서 도와주고 싶어서라면 정말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청와대는 이번 사건에 대해 얼른"불법성과 위법성은 없다"고 잘랐다. 그러나 기업에게 법보다 무서운 것은 정권의 보이지 않는 압력이다. 이를 공무원의 책임감과 의욕, 아니면 기업의 자발적 협조나 참여로 합리화하거나 포장해서는 결코 안 된다.'비즈니스 프렌들리'정부라면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철저히 차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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