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방망이와 공 값을 합쳐 1만1,000원이고, 방망이가 공보다 1만원이 비싸다면 공 값은 얼마일까. 시간 여유를 주면 대부분 500원이란 정답을 찾지만, 즉시 말하라면 의외로 1,000원이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많다. 미국 프린스턴대의 즉답 실험에서는 거의 절반의 학생이 틀린 답을 골랐다. 동전을 던져 앞면이 연속으로 나왔다면 다음에는 뒷면이 나올 확률이 높아질 것이라고 착각하는 '도박사의 오류'(gambler's fallacy)도 비슷하다. 논리적 추론을 생략한 채 직관에 의존할 경우의 판단 오류를 보여주는 예다.
▦직관은 이성적 사유 없이 대상을 곧바로 파악하는 정신 작용이다. 그러나 결코 완전한 무(無)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주관적 경험에 의존한다. 또 진화 심리학자들은 인류 초기단계에서 환경변화에 대처하기 위한 신속한 상황판단 요구가 뇌를 직관과 친하도록 진화시켰다고 한다. 최소 열량 소모로 최대 영양을 섭취할 수 있는 사냥터를 알아채거나 자연의 위협에 대응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 직관이 배우자 선택이나 경쟁자의 행위 예측 등에는 여전히 유용하지만 진화적 선례가 없는 관념적 판단에 약한 것도 자연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현대사회에서 추상적 판단이 날로 중요해지면서 직관의 힘은 약해졌다. 정부나 기업의 정책 결정은 물론, 삶의 질 향상을 위한 개인의 노력도 생물학적ㆍ자연적 고려를 넘어선 지 오래다. 물론 결코 완전할 수 없는 인간 이성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서라도 직관은 필요하고, 때로는 지혜를 빛내주기도 한다. 다만 나이 들수록 직관의 힘으로 지혜로워진다는 말이 이성의 태만을 변명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논리적 사유를 밀고 가려면 뇌가 많은 포도당을 소모한다. 체력이 떨어질수록 힘이 덜 드는 직관의 유혹에 넘어가기 쉬운 이유의 하나다(데이비드 애들러, <스냅> ). 스냅>
▦책상 앞에서 학습참고서와 씨름을 하거나 취직시험 준비에 열중하는 자녀에게 간식을 갖다 주는 엄마는 지혜롭다. 옛날에는 꿀물이 인기였는데 요즘은 영 아닌 모양이다. 한국양봉협회에 따르면 국내 벌꿀 생산량이 2005년 이후 거의 늘지 않고 연간 2만6,000톤 수준을 맴돈다. 일반가정의 소비가 조금씩 줄어 공급을 사전 제약하는 측면이 강하다고 한다. 살찌기 싫은 마음은 알지만, 그래도 꿀이나 과일이 과자보다는 낫다. 아이들만이 아니다. 책 읽기 좋은 계절에 어른들이 달콤한 꿀맛과 함께 합리적 사유에 눈떠도 좋겠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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