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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사투리를 쓰자

입력
2009.10.07 0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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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고장에서는/오빠를/오라베라 했다/그 무뚝뚝하고 왁살스러운 악센트로/오오라베 부르면/나는/앞이 칵 막히도록 좋았다…참말로/경상도 사투리에는/약간 풀 냄새가 난다/약간 이슬 냄새가 난다/그리고 입안에 마르는/황토흙 타는 냄새가 난다.'

박목월은 '사투리'를 이렇게 표현했다. 그에게 '머루처럼 투명한 밤하늘, 오디가 샛까만 뽕나무, 울타리 섶에 피는 이슬마꽃'은 단순히 '나무나 하늘이나 꽃이기보다 내 고장의 그 사투리라 싶었다.'사투리에는 고향의 흙 냄새와 풀 냄새, 그 냄새를 맡으며 지낸 기억들이 스며 있다.

사투리도 소중한 우리 말과 글

그래서 고향에만 가면, 고향 친구나 사람들만 만나면 거리낌없이 사투리가 튀어나온다. 박목월처럼'그 무뚝뚝하고 왁살스러운 악센트로'. 지금은 고향에서조차 사라져 버린 이상한 말들도 느닷없이 새록새록 생각난다. 시간에 대한 기억이 언어까지 되살려준다. 표준말의 규정에 의해 '교양이 없는 사람'이 된다. 한심한 지역 공동체의식, 지역색이라고 욕해도 좋다.

"골몰해도 한 목에 치우는 게 낫데이." 연이어 둘째 아이를 임신한 며느리의 전화를 받고 시어머니가 한 말이다. 서울 며느리는 이 말을 "골목을 치우려면 한꺼번에 치우는 것이 낫다"로 들었다. 마침 그 날 서울에는 큰 눈이 내리고 있었다. 이렇듯 사투리의 최대 약점은 소통 장애이다. 친절한 표준어 자막이 없었다면 <워낭소리> 를 본 300만명 중에서 할아버지 할머니의 말을 알아들은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됐을까. 사투리는 심지어 저 멀리 베트남에서 시집온 여자까지 고생시킨다.

우리의 사투리는 또 얼마나 정치적 존재인가. 한때는 지역감정의 상징으로 취급됐다. 지금도 그 감정의 찌꺼기는 남아 있다. 정권에 따라 특정 사투리가 기를 펴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사투리는 이념대립에까지 끼어든다. 상대의 말투를 근거로 자신의 주장이나 생각을 드러낼지 말지 결정하기도 한다. 이렇게 사투리가 불소통과 대립의 주범이니 살아남을 길이 없다. 안 그래도 고향의 냄새를 간직한 마지막 세대가 지나가면서 저절로 사라지고 있는 판에.

20세기 이탈리아 문학을 대표하는 명작 <그 날 밤의 거짓말> 의 작가 제수알도 부팔리노(1920~1996)도 그것이 안타까워 62세에 <그림자 박물관> (이레 펴냄)이라는 수필집을 썼다. 시칠리아의 작은 도시 코미소에서 태어난 그는 고향에서 사라져 이제는 그림자가 된 직업, 시간, 행동, 장소들을 하나씩 불러내 박물관을 만들었다.'쉰 살이 넘지 않은 사람은 기억도 하지 못하고, 예순 살이 넘지 않은 사람은 발음도 못하는 우리의 말'인 사투리(방언)도 물론 그의 수집 목록에 들어갔다.

어느 곳 할 것 없이 사투리는 이렇게 기록으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뿐이다. 그러나 부팔리노도 고백했듯 사투리가 글이나 문학 속으로 들어가 버리면 구어로 사용될 때 갖고 있던 반어적이고, 도전적이고, 뻔뻔스러운 본래의 독특한 개성을 잃어 버리게 된다. 글로서의 사투리는 김주영의 소설 <객주> 와 조정래의 <태백산맥> 의 뒤에 붙어 있는 낱말 해설이나, <워낭소리> 의 자막처럼 표준어의 도움을 구해야 한다. <워낭소리> 의 할머니 사투리에서 보듯 신랄함과 짓궂음이 가진 해묵은 깊은 장맛을 그대로 느낄 수가 없다.

문화상품에만 존재하는 사투리

말은 말로 써야 생명력을 가진다. 여기저기서 사투리로 말하기 대회를 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 사투리를 가장 적극적으로 되살리고, 쓰는 곳은 영화와 드라마이다. <친구> 에서 시작한 부산 사투리가 <해운대> 를 거쳐 <애자> 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웰컴 투 동막골> (강원도), <거북이 달린다> 와 새로 시작할 사극 <천하무적 이평강> (충청도), <목포는 항구다> 와 <화려한 휴가> (전라도)도 모두 사투리로 대화를 한다. 그것을 듣고 즐거워만 해서는 안 된다.

일상생활에서 자기 고장의 사투리를 가능한 한 많이, 자주 쓰자. 그래야 우리말은 물론, 나아가 우리글까지도 풍성해질 수 있으니까. 사투리도 분명 우리의 소중한 언어이다. 소통이 문제라고? 그게 어디 말 때문인가.

이대현 논설위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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