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한국은 '누아르적 감성의 종합판'이라고 극단 필통의 '바이올렛 시티'는 말한다. 낮게 조명이 깔린 무대에는 하염없이 비가 내린다. 가끔 포그 효과마저 동참한다. 황량한 무대를 양분하는 것은 가라오케 카바레와 이발소, 둘뿐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폭력과 섹스다. 무대에서 서울이라는 공간은 그렇게 두 가지로 인식된다.
지난해 '실험연극제 100 페스티벌'에서 '이발사를 살해한 한 남자에 대한 재판'이라는 제목으로 초연돼 대상과 연기상을 수상했던 작품이다. 이번이 3차 공연으로 제법 입소문이 난 탓인지 극장 안의 관극 열기는 뜨겁다.
이번 무대는 연극 어법으로 도시의 뒷골목을 어디까지 재현해 낼 수 있는가라는 쪽으로 더 바싹 밀어부쳤다. '연극 누아르'라 할 만하다. 작ㆍ연출자 선욱현씨가 도회 암흑가 정서의 우수마발들을 좁은 무대 속에 적절히 배치하는 솜씨가 돋보인다.
극의 리얼리즘은 과도하다. 이발소에서 들리는 교성, 반라 차림의 마사지 걸 등 선정적 차원에서만은 아니다. 카바레 지배인이 휘두르는 과도에 상대편 조직원이 쓰러지고, 그것을 피빛 물감이 뒤덮는 식이다.
관객들은 낭자한 선혈 등 무대 위의 상황을 즐긴다. 일부 극에 몰입된 장년 관객들은 무대의 색채가 농염해짐에 따라 거의 육두문자에 가까운 말을 뇌까리기도 한다. 욕설이 어린 여학생들의 키치 문화가 되고, TV에서 이불 밑 이야기를 노골적으로 공개하는 우리 사회의 분위기가 그대로 반영돼 있다.
특히 카바레 지배인(윤상호 분)이 요즘 유행하는 조폭의 어투로 난사하는 욕설의 어휘는 가공할 만하다. 작가가 3차에 걸쳐 대본을 수정한 결과라는데, 이 무대는 연극이 과연 당대의 현실을 얼마나 '리얼'하게 담을 수 있으며 또 담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제기한다. 25일까지 동숭아트센터 소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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