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山門)을 연다는 뜻의 '개산(開山)'은, 불가에서 풍치 있고 기운 좋은 터를 골라 절을 짓고 자연이 유구히 전해온 생명의 정신을 부처의 언어로 고쳐 대중에게 전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로 쓰인다. 절의 창건일로 이해하면 된다.
전국의 크고 작은 사찰 개산일이 유독 10월에 많은 것은, 이즈음의 단풍과 그 품에 깃들인 산사의 자태가 아름답기도 하거니와 대중들이 나들기 편하도록 일기(日氣)도 가장 순해지기 때문일 것이다. 사찰들도 이 날을 전후해 각기 특색 있는 잔치-이름하여 개산대제(開山大祭)-를 마련한다.
부산 범어사는 10일부터 이틀간 개산대제를 체험하는 특별 템플스테이 행사를 운영한다. 예불과 참선 공양 등 일상 속에 저녁 산사음악회, 새벽 암자순례, 주지스님과의 차담(茶談) 등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경북 영천 은해사도 1200돌 개산대제(10~11일)를 마련, 개산조 다례제와 법요식, 대중가수들을 초대해 벌이는 음악회 등 문화행사를 펼치기로 했다.
개산제와 별개로 교구본사 등 주요 사찰도 다양한 대중 산사 문화행사들을 마련했다. 구례 화엄사는 24일 '2009 화엄제' 산사 축제를 연다. 2006년부터 매년 '첫발자국' '길떠남' '길을 묻다' 등의 주제를 정해 진행해 온 축제의 올해 주제는 '길동무'다.
인류 보편의 길을 잊고 빚어지는 세상의 참상들을 돌이켜보고 "우리 모두가 지구라는 이 외로운 별에서 경쟁자가 아니라 길동무임을 깨닫는 자리"를 갖자는 취지다. 인도 전통 현악기의 명인과 터키의 전통 수피음악가들의 연주, 진도소리 명창들의 소리마당 등이 동행한다.
월정사는 16~18일 '오대산 불교문화축전'을 연다. 선재 스님의 사찰음식 시연, 어류 복원 생명살림 행사, 유등제와 작은 음악회 등을 즐길 수 있다.
순천 송광사는 11월 4일부터 12월 23일까지 '금강산림 대법회'를 연다. 송광사 방장 보성 큰스님을 비롯, 충주 석종사 선원장 혜국 스님, 서울 금강선원장 혜거스님, 해인사 율주 종진 스님 등이 매주 수요일마다 대중 앞에 나서 귀한 법문을 전하는 자리다.
강화 전등사는 제9회 '삼랑성 역사문화축제'를 마련했다. 10일부터 18일까지 열리는 행사의 올해 주제는 '역사와 소통'이다. '즐거움으로 역사와 대화한다'는 뜻에 맞춰 전등사 법화경판을 인쇄ㆍ제책하는 전통 방식을 대중들이 편하게 이해할 수 있게 시연하는 자리 등이 마련된다.
전등사 가을 음악회와 다례재, 영산대재, 지역 주민들과 함께 하는 강화문화 한마당, 생태사진전 등도 마련된다.
충남 서산 노을바다를 내려다보고 앉은 부석사는 2일부터 2박3일 동안 송편빚기, 천연염색 등 전통체험과 사찰 예불 및 수행체험, 도신 스님의 구성진 노래와 나희덕 시인의 시 낭송 등을 모닥불가에 앉아 즐길 수 있는 산사음악회를 마련해놓고 있다.
이번 추석 연휴 동안 고요히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싶은 이라면 해남 대흥사가 연중 진행중인 1박2일 산사체험 '새벽 숲길 걷기' 같은 행사를 찾아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두륜산 골짜기 '너부내'(너른 내)를 이리저리 가로지르는 9개의 다리를 건너며 단풍, 떡갈, 굴참나무들이 줄지어 선 10여 리 산길을 걷는 행사다.
특별한 행사가 있든 없든 불자에게든 아니든 산사는 늘 모두에게 열려 있지만, 이즈음의 산사는 제 품을 가장 넓게 펼쳐 연다.
최윤필 기자 walde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