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시간 내내 고통스러웠다. 불치의 병으로 죽어가는 한 남자의 모습이 슬퍼, 아니면 그 남자를 사랑하는 여자의 모습이 너무나 가슴 아파서라면 얼마나 좋을까. 감동, 감정이입이 주는 그런 행복한 고통이 아니다. 정말 새로운 느낌이나 감각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도 없는 영화를 봐야 하는 고통, 그런 3류 최루성 멜로물에 생명을 걸고 체중을 뺀 한 남자배우(김명민)의 애처로운 몸 연기를 보는 고통이었다. 개봉 9일 만에 100만명을 돌파했다고 제작사가 좋아하는 <내 사랑 내 곁에> (감독 박진표)를 보고 사람들이 속상해 하고, 화 내는 이유를 알 만하다. 내>
▦김명민은 루게릭 환자 그 자체다. 갈비뼈가 드러나는 앙상한 가슴과 배, 건드리기만 해도 부러질 것 같은 다리와 손, 그런 몸을 사리지 않는 연기. 영화를 위해 그가 얼마나 큰 고통을 참았는지 굳이 설명을 듣지 않아도 짐작이 간다. 그는 종우 역을 위해 100여일 동안 '굶기'로 매일 체중을 0.5~1㎏씩 줄였다. 철저한 인물 되기와 몰입의 명연기를 남긴 <하얀 거탑> <베토벤 바이러스> 의 김명민다운 선택이다. 그렇게까지 하며 종우 역에 열중했건만, 영화 속 그는 다가오지 않고 자신을 혹사시킨 배우 김명민만 그저 애처로울 뿐이다. 베토벤> 하얀>
▦유난히 배우들을 혹사시키는 감독들이 있다. 별난 인물, 독특한 소재 때문에 그런 것만은 아니다.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 에서 문소리는 정신지체장애인 역을 위해 경련과 쥐가 나고 우울증이 오는 것을 참으며 몸을 비틀어야 했다. 문소리와 함께 <박하사탕> 에도 출연했던 설경구 역시 감독으로부터 끝없는 질문을 받으면서 캐릭터 설정을 위해 같은 연기를 반복해야 했다. 오죽하면 이창동 감독 하면 혀를 내두르며 "변태"라고 할까. 봉준호 감독 역시 <마더> 에서 김혜자가 그랬듯, 배우로 하여금 수십 번 같은 연기를 반복하게 만든다. 마더> 박하사탕> 오아시스>
▦그러나 이들을 욕하는 배우는 없다. 그 반대다. 함께 작업한 배우들은 하나같이 그들의 철저한 자세와 작품에 대한 해석과 섬세한 연출, 배우 못지 않은 고민에 찬사를 보낸다. 설경구의 '변태'라는 말도 부연설명을 들어보면 결국 감사와 존경의 표현이다. 그만큼 작품을 위해 고민하고, 자신들의 고생이 작품 속에 살아서 더욱 빛을 발하게 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니 '혹사'를 마다할 배우가 있겠는가. <내 사랑 내 곁에> 에는 감독의 '그것'이 없다. 배우의 혹사만 있을 뿐이다. 그것이 영화를 보는 관객까지 혹사시키고 있다. 내>
이대현 논설위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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