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짬이 '역주 신단공안'을 읽는 재미에 빠져 있다. 신단공안이란 범죄 수사 및 송사(公案ㆍ공안)를 귀신같이 해결한다(神斷ㆍ신단)는 뜻이다. 1906년 5월부터 그해 연말까지 황성신문에 일곱 개의 이야기가 총 190회에 걸쳐 연재되었다. 순 한글로만 된 독립신문과는 달리 황성신문은 국한문 혼용으로 지식층의 독자들이 많았다. '신단공안' 또한 한문현토체로 별도의 번역이 없었다면 읽기 어려웠을 것이다.
범인은 누구일까 마음 졸이고 혹시나 주인공이 해코지나 당하는 건 아닐까 전전긍긍하다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봉(鳳)으로 불리웠다가 용(龍)으로 불리우는 김인홍, 김삿갓의 신출귀몰한 이야기는 흥미진진할 뿐 아니라 욕망에 대한 생각도 하게 한다. 저자는 미상이지만 소설 속에 등장하는 한 종교의 편파적인 묘사로 저자의 종교 혹은 그 시대상을 짐작할 수 있다. 이야기꾼이 종종 작품에 개입하는 것 또한 흥미롭다. 서양 소설에 익숙한 나머지 우리가 잊고 있던 우리 식의 이야기이다.
욕정에 눈이 먼 한 여인의 이야기를 읽다가 그 노골적인 묘사에 얼굴이 확확 달아올랐다. 살그머니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피는데 문득 백여 년 전 점잔을 빼던 한 지식인이 몰래 이야기의 즐거움에 빠져 있는 장면이 떠올랐다. 황성신문은 줄곧 경영난에 시달렸다. 구독료가 걷히지 않았다. 그것 또한 그 당시 지식인들의 이중적인 면모였을까.
소설가 하성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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