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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송이 채취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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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송이 채취 전쟁

입력
2009.10.04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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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9월 18일 새벽 강릉 해안으로 무장 간첩 26명이 상륙했다. 그날 11명이 강릉시 인근 청학산에서 숨진 채 발견됐고, 1명이 생포됐다. 잔당 소탕 때까지 49일 동안 강원도 산악 지대는 전쟁터가 됐다. 아군 11명, 경찰관 예비군 각 1명, 민간인 4명이 희생됐다. 민간인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산에 오른 것은 자연산 송이버섯 때문이었다. 송이는 쌀 농사만큼이나 중요한 소득원. 그러나 하필 송이 채취 시기에 무장간첩이 나타나 피해가 막심했다. 주민들은 군이 입산 통제를 일부 해제하자마자 서둘러 송이 채취에 나섰다 변을 당했다.

▦자연산 송이는 사시사철 딸 수 있는 게 아니다. 송이는 절기로 따지면 백로(올해는 9월 7일) 이후 2주일, 대략 9월 20일을 전후한 시기에 쑥쑥 자란다. 이 시기가 송이 채취의 적기다. 추석을 앞두고 송이가 본격 출하되는 게 이 때문이다. 이 기간이 지나 10월이 되면 송이의 값어치는 크게 하락한다. 기온 저하로 송이의 갓이 갈라져 모양과 맛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송이 채취 작업은 새벽 2, 3시께 시작해 오후 3, 4시께 끝나는데, 강원도에서 나는 송이는 다른 지역 송이에 비해 색이 깨끗하고 버섯자루가 굵어서 최상품 대우를 받는다.

▦송이는 죽은 나무에서 크는 일반 버섯과 달리 버섯 포자가 살아 있는 소나무 뿌리에서 발아해 자란다. 송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일본인들조차 양식 기술을 아직도 개발하지 못한 것은 소나무와 송이의 공생 메커니즘을 규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송이는 온도와 습도에 매우 예민하다. 섭씨 10~25도의 기후에서 비가 자주 내리는 게 생장의 최적 조건이다. 강원ㆍ경북 지역 높은 산 위 소나무에서만 자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송이의 독특한 향과 맛, 버섯의 항암 효과가 알려지면서 수요는 급증하고 있지만 공급은 항상 모자란다.

▦강원도가 다시 전쟁터로 변했다고 한다. 이번엔 송이 물량 확보 전쟁이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가을에도 고산 지역에 비가 내리지 않아 건조한 데다 낮 기온까지 높아 버섯 균사가 잘 자라지 못했기 때문이다. 1등급 기준으로 kg당 87만원을 호가하는데, 평균 송이 13~15개가 1kg이니 한 개에 5만8,000~6만7,000원 선이다. 쇠고기보다 비싸다. 소비자들은 울상이겠지만, 강원도 송이 채취 농가의 추석이 넉넉해질 것 같아 흐뭇하다. 양식은 어렵지만 한국산 청정 송이의 가치를 높이고 생산량을 늘릴 수 있도록 연구와 관리에 더 힘썼으면 좋겠다.

황상진 논설위원 apr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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